서정주(徐廷柱 1915~2001)
<생애>
시인. 호는 미당(未堂). 전북 고창군 부안면 선운리 출생. 어린 시절 서당에서 한학(漢學) 수업. 전북 부안군 졸포보통학교 수료.서울 중앙고보 및 전북 고창고보 중퇴. 방랑 생활. 1931년 고승 박한영 대종사 문하에 입산, 서울 개운사 대원암의 중앙 불교 전문강원에 입학, 그 뒤 중안 불교전문학교에서 수업.1936년 <동아일보>신춘문예에 시 '벽(壁)'이 당선되었고, 김달진, 김동리, 이용희, 오장환 등과 동인지《시인부락》을 주재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1938년 화투패를 떼 보고 선을 본 방옥숙 여사와 결혼하고, 첫 시집 '화사'를 남만서고에서 출간, 그 뒤로 일제 식민지 시대의 황막한 강산을 떠돌고 서울의 여기저기에 기류하다가 만주로 방랑, 한동안 간도에서 양곡주식회사 경리사원으로 있었고 용정에도 가 있었다. 일제 말기를 고향과 서울에서 전전하다가 해방을 맞음. 1946년 시집 '귀촉도'가 선문사에서 출간되어 시단에 나온 직후부터 놀라운 반응을 일으킨 그의 시가 이 시집에 이르러 정착되었다.
1946년 조선청년문학과협회를 결성하고 시분과 위원장을 맡았다. 동아대학 교수, 동아일보 사회부장 .문화부장 등에 취임한 후 1948년 정부수립과 동시에 문교부 초대 예술과장에 취임하며 1950년 전시에는 종군문인단을 결성하였다.
1950년 6.25 동란이 발발하자 조지훈, 이한직 들과 한강을 기적적으로 건너 대전, 대구 등지로 피난하였다. 전쟁과 함께 그는 극심한 정신분열증세를 일으켜 전시임시문인단체인 문총구국대 문우들의 보살핌으로 대구의 병원과 부산의 한거에서 요양하다가 9.28 수복 후 서울로 돌아왔다. 1.4 후퇴와 함께 가족과 더불어 피난열차, 마차 따위를 타고 전주로 내려갔으며 후배들의 알선으로 생활 터전이 마련되어, 그의 중견시 이후에 가장 중요한 시적 테마가 되었던 '신라체험'을 <삼국사기><삼국유사>를 통해 영감이 확대된 경지에 정착시켰다. 또 전주시대는 자살미수사건도 생긴 반면 동양사상과의 만남에 의해서 1936년 초기에 강렬하게 보인 보들레에르풍의 마성이 승화되었다. 그의 전주시대 그리고 광주시대에 이르러 이른바 대가시 <상리과원><무등을 보며>등 명작을 산출했는데, 이런 서정주문학의 예술적인 승리는 그의 정신분열증세와 함께 진행되었다. 전주의 전시연합대학 강사, 전주고교 교사, 조선대학 부교수 등으로 전전하다가 환도와 더불어 가족을 이끌고 서울로 돌아왔다. 예술원 회원, 서라벌 예술대학 교수, 동국대학 교수를 역임하면서 1960년 시집<신라초>를 출간했다. 그의 동양정신은 전후 세대의 공격을 받은 샤머니즘을 주조로 삼으면서도 노장철학. 유교 등을 체질화한 뒤 마침내 그가 청년시대부터 경험해 온 불교에서 완숙한 상상력을 얻어냈다. 그러나 그는 불교의 실상론 보다는 현상론, 연기론에 기울어져서 인연설화의 오묘한 전생에 시의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면서도 <한국성사략>과 같은 전율적인 학구 정신사를 확인함과 동시에 불교적 영생주의를 고조하였다. 특히 1968년 출판된 시집 <동천>은 범천과 같은 동천과 자아 사이의 성적 교감을 발휘한 것으로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님은 주무시고> <선운사 동구> <고요> <외할머니네 마당에 올라온 해일> <산수유꽃 나무에 말한 비밀>과 같은 어린 시절의 토속적 감동을 의식의 한계를 벗어나서 불러 일으키고 있다. 그를 가리켜 '한국최대시인'이라는 일반적인 찬양이 압도적이지만 그의 다음 세대가 가지고 있는 새로운 언어 패턴에 의해서 많은 회의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1972년 서정주 문학전집 전 5권이 나오면서 서정주의 문학사적 위치는 거대한 것으로 공고해졌다.
< 문학 세계>
'화사집(花蛇集)(1939)'의 시기인 그의 초기시는 악마적이고 원색적인 시풍으로 강렬한 생명의 분출을 노래하였다. 이러한 그의 시풍은 문단에 비상한 관심을 끌어 '한국의 보들레르'로 일컬어지기도 했다. 해방 이후 '귀촉도' 무렵부터 악마주의적 생리에서 벗어나 동양적인 사상으로 접근하여 심화된 정서와 세련된 시풍으로 민족적 정조와 선율을 읊었으며, '신라초(1960)' 무렵부터는 신라의 전통과 불교적인 세계의 심화를 보여주고 있다.그 이후는 다분히 신비주의적인 경향을 띠었고, '동천(冬天)(1968)', '질마재 신화(1975)' 등을 거쳐 이어져 왔다. 그의 시의 사상의 바탕은 영원주의 영생주의이며 문예사조상의 배경은 주정적(主情的) 낭만주의이며 예술관은 '심미주의(審美主義)에 바탕을 둔 것으로 평가된다.
서정주의 작품 세계의 바탕을 이루는 것은 동양 정신이다. 그의 동양 정신은 샤머니즘을 주조(主潮)로 삼으면서 노장 철학(老莊哲學), 유교 등을 체질화한 뒤 마침내 그가 청년 시대부터 경험해 온 불교에서 완숙한 경지에 도달한다. 그런데 그는 불교의 실상론(實相論)보다는 현상론(現象論), 연기론(緣起論)에 기울어져 있다.
그는 유치환과 더불어 '생명파' 시인으로 불리고 있다.
* 시집에 따른 작품 세계 분류
- [화사집](1938) : 악마적이며 원색적인 시풍, 토속적 분위기를 바탕으로 인간의 원죄 (原罪)를 노래함. 스스로를 죄인으로 여기고 그 운명적 업고(業苦)를 <문둥이>, <뱀>을 통해 울부짖었다. 이후 미당은 '한국의 보들레르(프)'로 불림
- [귀촉도](1946), [서정주 시선](1955) : 원숙한 자기 성찰과 달관을 통한 화해. 동양적 사상으로 접근하여 재생(再生)을 노래. 민족적 정조와 그 선율(旋律)을 읊었다.
- [신라초](1960, 정음사) : 불교 사상에 관심을 보여 주로 불교국 신라에서 시의 소재를 얻음.
선적(禪的)인 정서를 바탕으로 인간 구원을 시도하고 새로운 질서를 확립함
- [동천](1968, 민중서관) : [신라초] 시대보다 더 불교에 관심을 두고, 신비주의에 빠져드는 시기이다. - [서정주 시선](1974, 민음사)
- [질마재 신화](1975, 일지사), [떠돌이의 시](1976) : 토속적이며 주술적인 원시적 샤머니 즘이 노래되며, 시의 형태도 산문시, 정형시로 바뀌게 된다. 대표작 <신부(新婦)>
< 서정주의 친일 작품>
그의 `친일작품을 연대별로 살펴 보면 1942년 평론 [시의 이야기-주로 국민시가에 대하여], 1943년 수필 [징병 적령기의 아들을 둔 조선의 어머니에게], [인보(隣保)의 정신], [스무살 된 벗에게], [보도행], 시 [항공일에], [헌시(獻時)], 소설 [최체부의 군속 지망], 1944년 시 [무제], [오장 마쓰이 송가] 등이 있다.
서정주는 친일문학 활동뿐만 아니라 직접 행동으로 나서 1943년 10윌 엿새 동안 일본군 경성사단의 추계 훈련에 종군하고 참관기를 쓰기도 하였다.
해방 후 조선청년문학가협회 시분과 회장을 맡고 문교부 초대 예술과장, 한국문인협회 회장 등 문단의 감투를 쓰고 이승만의 전기를 접필하는 등 '정치문인'으로 5공화국 때까지 활동을 하기도 했다.
< 주요 저서>
《화사집》(1941) 《귀촉도》(선운사, 1946) 《신라초》(정음사, 1960) 《동천》(민중서관, 1968) 《서정주시선》(민음사, 1974) 《국화옆에서》(삼중당, 1975) 《질마재신화》(일지사, 1976) 《서정주의 명시》(한림출판, 1977) 《한국의 명시선》(서정주편, 현암사, 1979) 《학이 울고 간 날들의 시》(소설문화사,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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