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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자료실/한국의문인

고정희(高靜熙)의 생애와 작품 세계

by 황소 걸음 2016. 6.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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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희(高靜熙)


여류시인
1948년 전라남도 해남 생
1991년 6월 9일 지리산 등반 도중 실족사
한신대학교 졸업
1975년 [현대시학]에 <부활 그 이후>, <연가(戀歌)> 등 추천
1983년 <초혼제>로 대한민국 문학상
[목요시] 창립 동인, 1984년 [또 하나의 문화] 동인으로 활동.
민족문학작가회의 여성문학분과 위원장 역임.
 
【작품 세계】 
  취재차 지리산 등반 중 불의의 실족사고로 숨진 시인 고정희는 생전의 시 작업에서 냉철한 현실 비판 의식과 미학적 성취를 함께 갖춘 탁월한 문인이었으며, 1980년대 중반 이후 [여성해방문학]을 중심으로 여권 신장 운동에도 족적을 남긴 분방한 활동가였다. 기독교적인 세계관과 고향인 전남 해남의 남도 정서를 담은 첫 시집 <누가 홀로 술틀을 밟고 있는가> 이후 연시집 <아름다운 사람 하나>에 이르기까지 8권의 시집을 남겼다. 그 가운데 장시집 <초혼제>는 남도의 판소리 가락을 녹여냈으며, 1989년에 펴낸 <저 무덤 위에 푸른 잔디>에는 ‘어머니’를 축으로 여성 해방의식을 집중적으로 표출했다. 미학적 성취를 이루면서도 그의 시는 기존의 여류시에서 자주 지적되던 애잔함이나 섬세한 파문에 의존하기보다는 장중하고 웅혼한 문체를 보여 여류이면서도 ‘우리 시대에서 가장 남성적 리듬’을 갖고 있는 것으로 평가됐다. 미혼이면서도 독신주의를 고집하거나 자폐적이지 않았고 건강한 인간관계를 추구한 고인은 개인적 고독을 분방한 사회 활동으로 발전시켰다. 그는 시대의 불행을 견뎌내며 살아가는 이웃을 향한 무한한 사랑을 우리 민족의 설화와 역사에 깊이 연계된 상상력으로 힘있게 노래한 시인이었다.
< 초혼제>는 5ㆍ18광주민주화운동을 계기로 남도가락과 씻김굿 형식을 빌어 민중의 아픔을 위로한 장시집(長詩集)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절망하지 않는 강한 의지와 생명에 대한 끝없는 사랑을 노래한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고정희의 시세계는 기독교적 세계관의 지상실현을 꿈꾸는 희망찬 노래에서부터 민족민중문학에 대한 치열한 모색, 그리고 여성해방을 지향하는 페미니즘 문학의 선구자적 작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적 탐구와 정열을 감싸 안는다. 그리고 그 모든 시에서 생명에의 강한 의지와 사랑이 넘쳐난다. 고정희의 이와 같은 치열한 역사의식과 탐구정신은 5ㆍ18 광주 항쟁을 대하는 그녀의 태도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즉 그녀는 전통적인 남도 가락과 씻김굿 형식을 빌어와 민중의 고난과 그 고난 속에서 다져지는 저항의 힘을 힘차게 노래하였던 것이다. 현실사회의 개혁과 더불어 새로운 글쓰기의 혁명은 이처럼 고정희에게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두 개의 중요한 삶의 지향점이었다. 이토록 정직하게, 줄기차게, 자유를 향한 이념을 불태우며 민족, 민중, 그리고 여성의 해방을 위해 노력한 고정희의 문학가로서, 여성운동가로서의 실천은 한국 문학사에 대단히 중요한 귀감이 될 것이 틀림없다. 
 
【시집】
<누가 홀로 술틀을 밟고 있는가>(평민사.1979), <실락원 기행>(인문당.1981), <초혼제>(창작과비평사.1983), <이 시대의 아벨>(문학과지성사.1983), <눈물꽃>(실천문학사.1986), <지리산의 봄>(문학과지성사.1987), <저 무덤 위의 푸른 잔디>(창작과비평사.1989) , <광주의 눈물비>(동아.1990), <여성해방출사표>(동광출판사.1990) <아름다운 사람 하나>(들꽃세상.1991), <뱀사골에서 쓴 편지>(미래사.1991),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창작과비평사.유고시집.1992)
 
【참고자료】
 
1. <명작의 무대 - ‘이 시대의 아벨’> - 박래부 기자 : ‘문학 기행’(한국 일보.1989. 5. 14)
 
  고정희의 첫 시집 <누가 홀로 술틀을 밟고 있는가>의 서문에서 그의 글쓰기를 들여다볼 수 있는 단서를 남겨 놓고 있다. ‘광주가 내게 생의 길을 열어준 곳이라면, 수유리의 한국신학대학은 생의 내용을 가르쳐 준 곳’이라는 내용의 마지막 구절이 그것이다. 광주ㆍ해남으로 이어지는 그의 고향은 온화한 남도 자연에 실린 한(恨)의 정서와 가락으로 그에게 시인적 삶의 길을 열어 주었고, 수유리의 모교는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그의 삶을 채워주고 있다는 고백일 것이다.
  지금은 40대에 들어섰지만, 그는 ‘혼자서 건너는 융융한 30대’의 객지적 어려움과 쓸쓸함을 고향 해남을 생각하며 버텨냈고, 같은 기간에 밀어닥친 시대적 위기의식을 수유리에서 길러진 종교적 도덕성으로 맞서 왔음을 그의 시들은 보여 주고 있다.
  한 시대의 모순이 절정에 달했을 무렵인 지난 83년 출판된 시집 <이 시대의 아벨>은 당당한 서정과 육성적 힘으로 시대의 절망을 넘어 희망으로 나아가자고 늘어진 어깨들을 부추기고 노래함으로써 상한 영혼들을 위로하고자 한 아름다운 시들로 가득차 있다.
  이 시집 중 쑥국새 눈물 같은 남도 판소리의 휘몰이 같은 장단을 타고 빠르고 리드미컬하게 전개되는 시 <군무(群舞)>는 5월에 핀 꽃들의 죽음에 대해 노래하고 있다.
 
    벗이여
    말갛게 개인 하늘
    패랭이, 패랭이꽃 수천 송이
    고개 댕겅 부러지며 흩어지는 오월
    개나리 수백 그루
    밑둥 싹둑 잘리어 길바닥에 짓밟히는 오월
    백장미 지천으로 다발로 묶이고
    푸리지아 수천 송이 아름으로 묶이어
    동서남북으로 실려 가면서
    죽은 목숨이에요 죽은 목숨이에요 윙크하는 오월
                                                 - <군무> 첫째 연 -
 
  고정희는 ‘그 당시는 말의 의미를 감추고 숨기는 데 온갖 신경을 써야 하는 시기였다’고 말한다. 그는 5월의 죽음뿐 아니라 정신적 상처를 입은 ‘상한 갈대’와 ‘뿌리없이 흔들리는 부평초’ 등에 대해서도 좌절과 절망을 넘어서는 의지와 생명에 대한 사랑을 불어넣고 있는데, 문학 평론가 김주연(金柱演)은 시 <상한 영혼을 위하여>에서 시인의 기독교적인 면모와 절대자 아래서의 낙관성을 읽고 있다. ‘영원한 눈물과 영원한 비판이란 없다’는 시인의 단정의 근거와 인간을 향한 서늘한 열기로 가득찬 사랑이 그리스도 정신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뿌리없이 흔들리는 부평초 잎이라도
    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
    이 세상 어디서나 개울은 흐르고
    이 세상 어디서나 등불은 켜지듯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 가랴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
                          - <상한 영혼을 위하여>의 둘째 연 -
 
  서울 도봉구 수유리의 도봉산 기슭에 위치한 한국신학대학은 다른 단과대학들을 경기 수원으로 떠나보내고 이제 신학대 대학원 과정만 남아 단출하고 한가롭다. 예전 송림이 울창해서 아카데믹한 환경을 만들어 주던 학교 앞은 신흥 주택가로 변해 햇빛에 반짝이는데, 학교 수위실부터 정치적 구호들이 어지럽게 붙어 있다.
  수업 중이거나 예배 중이어서 고요한 캠퍼스에는 현수막과 벽보들이 더욱 선명히 다가오는데 구호들은 ‘문익환 목사를 석방하라’는 내용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대자보 또한 일반대학의 글들과 형식과 내용이 비슷한데 끝부분의 ‘성령이 우리와 함께 하옵소서’라는 구절이 다르다.
  시골 중학교 건물과 흡사한 2층 교사 중 커튼이 반쯤 드리워져 있는 곳이 예배실이다. 누군가 혼탁한 사회 속에서의 구원 문제를 설교하고 있는지 간간이 ‘사회’와 ‘구원’이라는 단어가 창밖에까지 들려오더니, 뒤이어 의외로 우렁찬 목소리의 찬송가 합창이 뒤따른다.
  예배실은 재학생들뿐 아니라 졸업생들도 사용할 수 있는 곳이다. 시 <서울 사랑―말에 대하여>의 첫 부분은,
 
    어두워 오는 저녁 일곱 시
    우리는 수유리 기도원으로 갔다.
    팔십년대 두 해를 보내는 심사가
    너나없이 답답하고 속수무책이라는 듯
    철야 기도회나 가자고 누군가 제의했을 때
    아무도 ‘아니’라고 막아서지 못했으므로
    여덟 시간 근무를 마친 동료들은
    사일구탑 부근을 지나고 있었다.
 
고 산문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12월의 한기에 떨며 몇 명의 수도승들이 엎드려 있는 가운데 새벽 4시까지 경건하게 진행된 철야 기도회의 정경을 묘사하고 있는 이 시는 그러나, 밤 새워 올린 기도가 한낱 「말」로 끝나는 듯한 예감을 떨치지 못하며 다시 일상 속으로 복귀하면서 겪게 되는 무력감과 허탈감을 자조적이고 회의적으로 고백하고 있기도 하다.
  예배실이 있는 교사의 뒤편은 소나무와 잡목들이 섞여 잇는 숲이다. 그 숲 여기저기에는 그가 학생 시절에 묵었던 기숙사 건물이 오래된 방갈로처럼 낡아가고 있다. 그는 졸업 후에도 대구 광주 등에 머물 때를 제외하고 서울에서는 대개 수유리 부근에서 셋방을 살았다. 수유리를 떠나 해남을 가는 길에 광주 북구 망월동에 있는 광주 시립묘지 제3묘원에 들렸다. <이 시대의 아벨>은 구약성경 창세기편에서 형 카인에게 죽임을 당하는 양치기 아벨의 상징성을 빌린 시이자 시집의 제목이다. 망월동묘지는 시집 <이 시대의 아벨>에 충만한 시대적 은유들이 가장 근접해 있는 공간이지만, 시 <이 시대의 아벨>에 망월동을 가리키는 직접적인 문구들은 없다.
  그가 망월동을 직접 다루고 있는 시는 <망월리 비명(碑銘)―황일봉에게>와 <망월리 풍경>이다. <망월리 풍경>은 「여보, 당신은 천사였소 / 천국에서 만납시다」라고 새겨 넣었던 한 사내의 슬픔을 위로하기 위한 시이자 그곳에 잠든 지어미를 위한 진혼시이다. 망월동으로 가는 길에 택시 운전사는 「매년 5월 18일이 되면 이 길이 온통 차들로 덮여 차라리 걸어가는 것이 빠르다」고 일러준다.
  서쪽 산마루에 위치한 제3묘원에는 10여 명의 방문객들이 서성이고 있다. 방문객들은 대부분 젊은이들인데 연인으로 보이는 남녀는 1백여 기에 이르는 무덤을 하나하나 둘러보며 묘비명을 메모하기도 한다. 봉분이 모두 자그마한 그 무덤들 중에는 수수한 모습의 무명인의 묘들이 있는가 하면, 묘비에 ‘투쟁’이라는 띠를 두른 묘도 있고, 어느 유명한 대중가수가 헌화해서 호화로워 보이는 무덤도 있다.
  ‘사자(死者)를 죽었다고 생각지 말자 / 생자(生者)가 있는 한 / 사자(死者)는 살 것이다’라는 화가 빈센트 반 고호의 시구가 생각난 것은 묘원 주변의 소나무들 사이로 물결을 이루고 있는 현수막들 때문일 것이다. 그곳에 쓰인 「반역의 어둠을 뒤집어」 등의 문구가 아니더라도 고정희의 시집 <이 시대의 아벨>을 통해 도달하고자 했던 것 또한 사자(死者)들의 죽음과 생자(生者)들의 아픈 기억들이 위안받는 세계, 현세적 억압이 접근할 수 없는 세게, 한과 그리움이 손잡는 세계, 공동체적 사랑과 서정의 세계일 것이다.
  공동체적 혹은 가족적 사랑과 서정에 대한 추억이 남아 있는 현실적 공간은 대부분의 경우 각자의 고향이다. ‘산과 나무의 빛깔이 주는 아름다움을 눈여겨 보아 달라’는 고정희의 고향 해남이 아름답고 살기 좋다는 점은 통계적으로 확인된 사실이라고 말할 수 있다.
  몇 해 전에 한국일보가 ‘전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을 조사했을 때 가장 많은 사람이 가리킨 곳이 해남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점 또한 현실적 고려가 없었던 호사가들의 한낱 허사였다고도 말할 수 있다. 해남군 삼산면 송정리 고향집에 살고 있는 그의 큰오빠 고성하(高盛夏)는 ‘다시 도회로 나가려 해도 이 집을 헐값에라도 살 사람이 없다’고 말한다. 현대식으로 개조한 그 집은 말끔하고 규모도 꽤 큰 편이었는데 그 동네 집들과 논밭들이 모두 넓게 터를 잡고 있었다.
  사과나무의 아름다운 빛깔을 보기 위해 우리는 집 뒤의 아주 야트막한 동산에 올랐다. 산으로 가는 길가에 조그만 저수지가 있다. 그는 ‘고등학교 때는 심심하면 이곳에 앉아 저수지를 바라보았다’고 말했다. 그가 앉았던 자리에 지금은 무덤 하나가 세워져 그가 고향에 없는 동안에도 저수지를 대신 바라보고 있다. 2년 전에 돌아가신 그의 어머니의 무덤이다. 6번째 시집 <지리산의 봄>에는 이 어머니를 그리는 지극한 사모(思母)의 시 7편이 실려 있다.
 
2. 출처 : 우리시대의 시인연구(도서출판 시와사람,2001)
 
고정희(高靜熙,1948~1991)

1. 서 론

시인 고정희는 해남군 삼산면에서 출생하여 독신녀로 치열한 현실 인식과 여성해방주의, 기독교정신과 지리산을 그리고 해남을 떠올리게 했던 시인이었다.
실천문학사 일을 보던 소설가 김영현이 본 고정희의 마지막 모습은 종로에서 있었던 국민대회 때 거리에 가득한 최루탄 속에서 눈물을 흘리던 모습이었다.
부당한 현실에 분노하고 개혁을 위해 끊임없이 투쟁하며 시를 쓰던 시인은 우아하고 고상한 여류문인이 아니었던 것이다. 해남 그의 생가는 시인이 생전에 사용하던 물품과 손때 묻은 책들을 그대로 보존한 방을 비워두고 있고 그 곳을 찾아간 사람들은 그의 생전의 지향점과 흔적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또 고향집 뒷동산에 늘 정갈하고 푸르게 관리되는 그의 묘소에 참배까지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이렇게 각별하고 지극하게 기억되는 걸까. 그의 시작품들을 통해 시세계를 살펴 보기로 한다.

2.존재의 이유와 구원의 시작(詩作)

시인의 시혼이 그 누구보다도 치열하고 열정적이었음은 일단 다작의 시집들과 각 시집들과 각 시집의 독자성에서 알 수 있다. 그가 남긴 10권의 시집에는 시대와 사회와 삶에 대한 성찰과 고뇌 뿐 아니라 어둠을 뚫고 나아가 새벽을 깨우려는 의지로 충만해 있다.
최초의 시집 「누가 홀로 술틀을 밟고 있는가」(평민사,1979)를 출간한 것을 비롯하여 10권 정도 되는데 1979년부터 1991년까지 1-2년 사이에 꾸준히 한권의 시집을 출간하였다. 유고집「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창작과 비평사,1992)와 한국대표시인 100인 선집 중 90번째 시선「뱀사골에서 쓴 편지」(미래사,1991)가 있다.
고정희는 놀랄 만한 다산성 시인이면서도 결코 어느 하나 함부로 창작해 내지는 않았다 고 평가된다. 오직 '시를 쓰기 위해서 살았던'것 같은 그에게 시는 존재의 결과이자 이유였고 구원이었다.

3. 남다른 열정과 사회활동

그의 삶이 남다른 열정과 순수로 점철된 탁월한 것이었음은 그를 아는 사람들에게서 흔히 들을 수 있는 평가이다. 그는 자신과 주변 사람,사회와 세상과의 관계를 선명히 파악한 사라마으로서 인생을 일관성있게 그리고 뚜렷한 목적의식을 갖고 인생에서 우리가 소망하고 또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실천한 사람 중의 하나이며 시와 삶이 거의 일치한 보기 드문 시인이었다.
기독교 신문사,크리스챤 아카데미 출판간사, 가정법률상담소 출판부장, <여성신문> 초대 편집주간을 거쳐 여성문화운동 동인<또 하나의 문화>에서 열심히 활동하였는데 이런 활동들은 그의 시를 "정환(情恨)'이나 '슬픔' 등과는 거리가 먼, 활기와 강인함으로 가득 차게 한 계기가 되었다.
그의 시는 사유나 관념을 통해서 창작된 것이 아니고 현실 생활을 통해서 창작되었고 그래서 늘 살아 움직여 역동성과 다양성을 지녔던 것이다.
그 생애의 치열함에는 수유리 종교의식과 광주의 역사의식,그리고 여성의식이 기저에 깔려 있었다. 새벽 다섯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시를 쓰거나 묵상에 잠기는 생활을 했던 그는 분명 시를 통해 구원에 이르려 한 시인이었다.

4. 어둠의 시대와 불기둥의 시(詩)

시인의 초기 시편들은 막막한 광야를 인도하는 불기둥을 지향하고 있다. '불기둥'은 구약성서에서 '구름기둥'과 짝을 이루는데 모세를 좇아 애굽의 노예생활을 벗어나 새로운 땅을 찾아 광야를 헤매이던 이스라엘 민족에게 하나님이 보내신 가이드가 바로 불기둥과 구름기둥이다.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인도하신 하나님에게서 고정희는 구름기둥이 아닌 불기둥을 취하였다. 그것은 다름 아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바로 낮이 아닌 밤이요, 어둠과 암흑의 땅이며 바로 '실락원'이라는 인식 때문이었으리라.
시인의 정신과 영혼이 '불의 상상력'에 근거해 있음을 절감해 왔다는 정효구 교수의 지적과 같이 그의 초기 시집들은 이 '불기둥'이 장악하고 있으며 성서의 비유와 상징을 즐겨 사용하고 있어 서구적인 분위기가 가득하다.
그의 첫 시집「누가 홀로 술틀을 밟고 있는가」는 우리에게 다소 생소한 '술틀 밟는 여자'의 이미지로 채워져 있다. 포도주를 만들기 위한 술틀을 밟는다는 행위자체가 지중해 연안의 이국적 정서를 유발할 뿐 아니라 짜라투스트라, 카타콤베,브라암스,파블로 카잘스 등의 제목에서도 서구적 정서를 느끼게 해 이런 주제들이 어쩐지 시인의 몸에 잘 맞지 않는 어딘지 겉도는 옷처럼 여겨지는 것이 사실이다.
『실락원기행』이야말로 더더욱 불길의 뜨거움으로 휩싸여 있다. 춥고 어두운 땅과 인간들을 녹일 수 있는 질화로의 뜨끈함,밤과 암흑의 시대를 밝힐 수 있는 램프의 밝은 빛, 꿈의 불기둥을 꿈꾸었던 것이다. 그리고 시적 자아의 지향은 끊임없이 불을 붙여 어둠을 밝혀야한다는 <나찜 히크메트(Nazim Hikmet>에 사로잡혀 있었다.

내가 불을 붙이지 않거나
그대가 불을 붙이지 않거나
우리가 불을 붙이지 않는다면
이 어둠을 어떻게 밝힐 수 있을까?

『이 시대의 아벨』 시편들에서 두드러지는 것도 시대의 어둠에 대한 인식이다. 카인에게 무고하게 살해된 아우 아벨을 찾는 하나님의 물음과 질타가 고정희의 시를 통해 우리에게 쏟아지고 있다. 안락과 번영과 평안을 위해 우리가 저버린 아벨은 누구인가? 아벨은 바로 억압받는 민중이며 억울하게 숨져간 광주의 원혼들이다.

오 아벨은 어디로 갔는가
너의 안락한 처마 밑에서
함께 살기 원하던 우리들의 아벨,
...중 략...

너의 식탁과 아벨을 바뀠느냐
너의 침상과 아벨을 바뀌느냐
너희 교회당과 아벨을 바뀠느냐
회칠한 무덤들, 이 독사의 무리들아
너희 아벨은 어디에 있느냐

-「이 시대의 아벨」중간 부분

80년대 초 우리 사회를 무고한 아벨을 죽인 어둠의 시대로 인식하였지만 춥고 어두운 겨울의 무덤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는 희망과 용기를 간직하는 것만이 오직 어둠을 이기는 비결이라고 생각했다.

이 어둠 속에서 우리가 할 일은
오직 두 손을 맞잡는 일
손을 맞잡고 뜨겁게 뜨겁게 부둥켜 안는 일
부등켜안고 체온을 느끼는 일
체온을 느끼며 하늘을 보는 일이거니

-「서울 사랑-어둠을 위하여」일부

5. 살림의 굿,마당굿시

모태신앙인으로 자라나 기독교 정신이 충일하던 고정희는 한국적 전통의 계승과 남도 가락의 재현을 시인으로서 부여받은 최대 과제로 인식했다.
대한민국문학상을 수상한 시집인 『초혼제』는 고정희의 시세계를 본격적인 수준에 오르게 한 장시집이다.
죽은 사람의 영혼을 종교적이며 상징적인 방법을 통해 씻겨 줌으로써 저승으로 천도할 수 있도록 하는 무속적 제의인 '씻김굿'을 차용한 이시집에서 그는 죽음과 부활을 다루었는데 총5부중 특히 <사람 돌아오는 난장판>과 <환인제>를 마당굿시로 창작하였다.
이는 죽은 사람을 대상으로 행해지는 씻김굿이 시대의 어둠과 절망에 짓눌려 죽은 영혼을 천도하는데 적합한 제의라는 것을 수용한 반기독교로의 전환인 동시에 우리의 전통적 가락을 오늘에 새롭게 접목시키려 한 관심사의결과였다.
이에 비해 6년 후에 출간한『저 무덤 위에 푸른 잔디』에서 우리는 좀더 본격적인 '굿시'를 대할 수 있다. 이 시집은 부당한 역사에 대한 회개에서 치유와 화해에 이르는 씻김굿을 그 주요한 창작의 근간으로 삼고 있으며 그 굿의 효과적인 정서적 공감대 형성의 토대로서 어머니라는 주의 한을 어머니의 가슴으로 품어 역사속에서 희생당한 뭇 민중여성의 넋에 접맥시키려는 여성민중주의를 표방한 점에서 독자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 5월의 광주를 절규하거나 새기는 많은 시인들이 있었지만 그 상처와 한을 역사 속에서 이름도 없이 희생당하고 숨져간 민중여성과 관련시켜 예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을 위로하면서 또한 민주화에 방해가 되는 바람직하지 못한 여성의 리스트를 열거하기도 하였다.

오늘날 어찌하여 민주길이 막혔는고 하니
복종생활 순종생활 굴종생활 '석삼종'때문이라
여자팔자 빙자해서 기생 노릇하는 여자
현모양처 빙자해서 법적 매춘하는 여자
사랑타령 빙자해서 노리개 노릇하는 여자
미모 빙자해서 사치놀음 하는 여자
가정교육 빙자해서 자녀차별 하는 여자
남편출세 빙자해서 큰소리치는 여자
-이하 중략-

이 땅의 여성 중 이 화살을 비껴갈 만한 여성이 있을까? 이 같은 현실을 넘어서서 우리가 지어야 할 '살림 의 집'아름답고 이상적인 집이 그려지기도 하였다.

누구나 일할 권리 있는 집이요
누구나 쉴 자유 있는 집이요
누구나 맡은 임무 있는 집이요
누구나 타고난 천성대로 받들 책임 있는 집이라

집안살림 나라살림 출입문 따로 없고
가사일 바깥일 따로 없는 집이라
차별이 없는 중에 자기 길 각자 있고
귀천이 없는 중에 각자 직분 있는 집이라
조화 있고 화목있고 위로 있는 집이라

원래 마당굿판을 위한 대본으로 쓰여진 이 시집으로 실제 공연을 하면서 그 현장성을 점검했더라면 훨씬 더 감칠맛 나고 거침없는 그리고 화자의 청중들이 그야말로 하나가 되어 한 판 어우러지는 그런 시로 향상될 수 있었으리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6. 눈물의 시와 광주

고정희의 시세계는 흔히 첨예한 현실인식과 준열한 역사의 증언을 줄기차게 해댄 '메시지 강한 목적시'로 인식되지만, 80년대 후반에 이르면서 그의 시에서 처연한 슬픔과 절망,고독이 점차 짙어지고 '불기둥'으로 서기보다는 주체할 수 없는 '눈물 바다'에 침잠함을 볼 수 있다. 이는 늘상 '있는 것'이 아니라 '있어야 할 것'을 좇으며 살아온 열정적인 그의 삶 속에서 눌려 있던 눈물많고 낭만적인
섬세한 심성이 시대의 무게를 떨쳐내면서 자연스레 점차 자신의 시세계를 장악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한편 개인적으로는 고향을 상징하는 어머의 부음과 독신자로서 맞게 되는 40대의 회환 등이 결핍과 갈망을 한층 강화하게 된 때문이라 이해된다.
해남에서 태어나 70년대말 광주 YWCA간사로 일한 적 있는 그에게 광주는 마음의 고향이었고 그래서 광주의 고통은 뼈저리게 다가왔다. 『눈물꽃』이나 『지리산의 봄』『저 무덤 위에 푸른 잔디』『광주의 눈물비』 등의 시집에 이르면 온통 흘러내리는 눈물이 가득하다. '눈물꽃'에서 가장 처벌한 세계인식이 드러난 시는 『프라하의 봄.8』시편들이다.
산발하고 눈물 핏물 뒤집어 쓴 채 젖가슴 도려낸 흉악한 꼴로 두 눈에 쌍불커고 오는 '미친년'이 바로 5월의 원혼이다. 처참하게 죽어 구천을 헤매는 영령들은 '하나님께 삿대질하며,하늘의 동맥에다 칼을 꽂는'미친 짓을 한는데 이는 바로 절망에 대한 시인의 인식이요 절규이다.
하지만 눈물 범벅이 된 속에서도 고정희의 시는 여전히 뜨겁고 강하다. 상처를 그냥 덮어두고 쉬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잊어서는 안된다고 외치는 그의 모습은 '광야의 선지자'와 같았다.

오월이라는 의미를
그대 저녁밥상에서 밀어내지 말라
광주는 그대의 밥이다

오월이라는 눈물을
그대 마른 가슴에서 닦아내지 말라
광주는 그대의 칼이다

-「망월동 원혼들이 쓰는 절명시」일부

눈물에 젖어 세계를 향해서 외치는 시인의 음성은 한없이 강인하고 절박하면서도 섬약하고 투명해서 '불의 혼'과 '물의 심성'으로 시작품에 스며들어 단일성을 거부하는 폭넓은 시세계를 형성할 뿐 아니라 리얼리즘시와 서정시의 화해를 가능케 하였다.

7. 지리산과 고향 그리고 어머니

지리산은 고정희의 정신적 고향이었다. 고단하고 외로울 때 그에게 사랑과 희망을 충전시켜 품어주던 지리산은 늘 시혼을 일깨워주던 그리운 곳이었다. 그리고 결국 그가 최후에 안긴 곳이 되고 말았다.

아름다워라
세석고원 구릉에 파도치는 철쭉꽃
...중략...

나는 다시 구불거리고 힘겨운 길을 따라
저 능선을 넘어가야 한다
고요하게 엎드린 죽음의 산맥들을

온몸으로 밟으며 넘어가야 한다
이세상으로부터 칼을 품고, 그러나
서천을 물들이는 그리움으로
저 절망의 능선들을 넘어가야 한다

-「지리산의 봄4-세석고원을 넘으며」일부

아름다운 철쭉이 파도치는 지리산을 울음을 참으며 그리움을 품고 절망의 능선을 넘어가는 시인의 모습은 왠지 비장하기까지 하다. 가슴속의 불을 뿜어내고 나약해져가는 육신을 다독이며 지리산 자락에서 위안과 책망을 얻는 것이다.
시인의 말처럼 '시도 때도 없이 두 눈을 타고 내려와 내 완악한 마음을 다숩게 저미는 눈물,세상에 남아 있는 것들과 세상 밖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보게 하는 눈물 그 눈물이 '지리산의 봄' 시편들에 한껏 배어있다.
그의 시를 '리얼리즘의 시'로 특징지으면서 그녀의 시에는 시적 자야와 세계와의 갈등 양상이 리얼하게 드러나 있고 시적 자아의 진리에의 염원이 잘 나타나 있다고 지적한 송현호 교수는 고정희의 시가 서정시 중심의 우리 시단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여 우리 시의 폭을 넓혔다고 그 의의를 평가하였는데 이는 고정희에게 지리산과 고향인 해남,어머니가 늘 자리하고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여겨진다.
고향의 주인이신 어머니는 고정희에게 있어서 영원한 안식처인자 우주의 자궁이며 해방 사회의 이상적인 인간형이기도 하다.

내가 내 자신에게 고개를 들 수 없을 때
나직이 불러 본다 어머니
짓무른 외로움 돌아누우며

새벽에 불러본다 어머니
더운 피 서늘하게 거르시는 어머니
달빛보다 무심한 어머니
...중략...

천지에 가득 달빛 흔들릴 때
황토 벌판 향해 불러 본다 어머니
이 세계의 불행을 덮치시는 어머니

만고 만건곤 강물인 어머니
오 하느님을 낳으신 어머니

-「어머니, 나의 어머니」

그 어떤 어머니가 가슴 저리게 그립지 않으리오만 '부음'을 받고 달려가 '수의를 입히며' 바람개비처럼 가벼운 어머니를 '하관'해 땅에 묻고 '유채꽃밭을 지나며' 회상하는 과정 과정마다 눈물겨운 시작품들이 뒤따름은 그의 삶의 중심축에 어머니가 자리하고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그의 시에서 어머니는 눌림받은 여성의 대명사이며 잘못된 역사의 고발자요 증언의 기록이며 동시에 치유와 화해의 미래이다.
그래서 시인은 인간세계의 본을 어머니의 자궁으로 인식하기도 하였다. 그가 운동가가 아닌 시인으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은 그에게 지리산과 고향 어머니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고향정신'은 시세계의 서정적 원천이 되어 리얼리즘시에 서정성을 부여하는 긍정축으로 작용하였다고 생각된다.

8. 일생마침

우리나라 여성해방운동과 여성문화운동에 있어서 고정희의 궤적은 큰 발자취로 남겨졌다. 그의 시집명대로 '여성해방출사표'를 던지면서 시작된 그의 여성해방운동과 글쓰기는 우리 여성사와 문학사에 길이 기억될 만한 것이다
이 시집에서 우리는 여성해방사상만을 목소리 높게 외쳐대는 구호성 시와는 다른 차원 시다운 시를 접하게 되는데 여성사에 대한 남다른 이해를 바탕으로 역사와 시의 새로운 결합을 꾀한 점 여성들 간의 벽을 충분히 인식해 계층간의 차이나 결혼 여부를 뛰어넘는 대동단결을 호소한 점 사람의 근본과 돌아갈 곳을 '어머니'의 모성으로 상징화한 점 등이 탁월하다.
고정희 시인은 시인이며 구도자이며 운동가이자 학자이고 싶었던 그의 삶이 지향하는 대로 늘 치열하고 열정적인 삶을 살았다. 그에게 있어 시와 삶은 하나였던 것이다. 그런데 시인다운 통찰력으로 자신의 죽음을 예감했던 것일까? 사후에 그의 책상 위에서 발견된 시「독신자」는 그로부터 며칠 후 있을 자신의 장례식 광경을 미리 본 것처럼 묘사하고 있어 많은 사람을 경악케 하였다.

환절기의 웃장을 정리하듯
애증의 물꼬를 하나 둘 방류하는 밤이면
이제 내게 남아 있는 길
내가 가야 할 저만치 길에
죽음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크고 넓은 세상에
객사인지 횡사인지 모를 한 독신자의 시신이
기나긴 사연의 흰 시트에 덮이고
내가 잠시도 잊어본 적 없는 사람들이 달려와
지상의 작별을 노래하는 모습 보인다

뒤늦게 달려온 어머니가
내 시신에 염하시며 우신다
내 시신에 수의를 입히시며 우신다
저 칼날 같은 세상을 걸어오면서
몸이 상하지 않았구나 다행이구나
내 두 눈을 감기신다.

-「독신자」중 일부

해남가는 길에 동행했던 벗들에게 시인은 이렇게 자기 삶을 정리하는 시를 남겼다. 시인은 1991년 6월 9일 즐겨 찾던 지리산에서 안좋은 일기에 감행한 산행 도중 실족사하여 생을 마감하였다. 장례식은 광주기독병원에서 치루어졌다. 중년의 문턱에서 마감한 짧은 생애동안 현실과 여성을 끊임없이 일깨우며 자신을 부단하게 채찍질하던 여성 시인 고정희는 이렇게 우리 곁을 떠나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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