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하 [金芝河] (1941∼ )
시인. 본명 김영일(金英一), 호는 노겸(勞謙)
1941년 전남 목포(木浦) 출생
1964년 한일회담 반대 시위에 적극 가담했다가 체포ㆍ투옥되어 4개월 동안 옥살이를 함
1966년 서울대 미학과 졸업.
1969년 「황톳길」 등 시 5편을 『시인 詩人』지에 발표
1970년 5월, 담시 『오적(五賊)』 을 발표하여 반공법 위반으로 체포ㆍ투옥.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사형 선고받음, 7월 무기징역 감형
1975년 2월 출옥후 옥중기 「고행―1974」 발표, 재차 투옥됨
1976년 형집행정지로 석방되었으나, '인혁당 사건'의 진상을 밝혀 석방된 다음달에 다시 체포.
1975년 옥중에서 <로터스 Lotus> 특별상 수상, 노벨문학상 후보 추대됨
1980년 12월 형집행정지로 석방
1981년 <위대한 시인상>과 <브루노 크라이스키 인권상> 수상
그는 1964년 대일 굴욕외교 반대투쟁에 가담해 첫 옥고를 치른 이래 민주화운동에 투신하여 독재권력에 맞선 행동하는 양심으로 인정받은 시인이다.
80년대 이후에는 그리스도교사상ㆍ미륵사상ㆍ화엄사상ㆍ선불교ㆍ기(氣)철학 등의 여러 사상들을 재해석하여 자신의 독특한 생명사상을 펼치거나, 그에 따른 생명운동을 벌이는 데 힘쓰고 있다. 시에서도 정치적 경향의 시보다는 주로 생명사상을 바탕으로 한 담시와 서정시를 쓰고 있다.
현재 명지대 국문과 석좌교수, (사)생명과평화의길 이사장이다.
최근에는 과거와는 다른 여러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 작품 세계>
그의 시세계를 크게 네 영역으로 나누어보면,
첫째 초기 서정시로, 현실에 대한 강렬한 부정과 민주주의 정신에 따른 1960~70년대의 메마른 현실을 반역적 감수성으로 노래한 시집 <황토>(1970)와 <타는 목마름으로>(1982)가 이에 속한다.
둘째 담시의 세계로, 우리의 전통적 민중문학 양식을 탁월하게 계승하면서 이를 통해 1970년대의 정치현실을 날카롭게 풍자ㆍ비판한 시집 <오적>ㆍ<비어 蜚語> 등이 이에 속한다.
셋째 서사시의 세계로, 1980년대의 생명사상에 따른 후천개벽(後天開闢)의 필요성을 역사적 상상력으로 담아 대설(大說)이라 이름붙인 시집 <남 南>(1982)과 <이 가문 날의 비구름>(1988) 등이 이에 해당된다. 넷째 최근의 서정시 세계로, 초기 서정시의 직설적인 표현과는 달리 달관의 자세로 구도자적 정서를 담은 시집 <애린 1ㆍ2>(1987)ㆍ<별밭을 우러르며>(1989)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저서>
『황토(黃土)』(1970) 이후, 시선집 『타는 목마름으로』(1982), 『검은 산 하얀 방』(1986), 『애린』(1986), 장시 『이 가문 날에 비구름』(1986), 『별밭을 우러르며』(1989), 담시집 『오적』(1993), 『중심의 괴로움』(1994) 등의 시집이 있다. 이밖에도 대설(大說) 『南』(전5권, 1994년 완간)을 비롯해, 산문집 『나의 어머니』(1988), 『밥』(1984), 『민족의 노래 민중의 노래』(1984), 『남녘땅 뱃노래』(1985), 『살림』(1987), 장시 『타는 목마름에서 생명의 바다로』(1991), 대담집 『생명과 자치』(1994),『사상기행』(전2권, 1999), 『예감에 가득찬 숲그늘』(1999), 강연 모음집 『율려란 무엇인가』(1999) 등의 다수의 저서가 있다.
<참고 자료>
1. 김지하가 말하는 필명 지하의 의미
5. 16 군사 쿠데타 뒤니까, 아마도 스물두 살 때였나 보다. 그때 나는 서울대학교 문리대학 미학과에서 공부하고 있었고 학교 앞에 ‘학림’이라는 음악다방이 하나 있었는데 그 다방에서 곧 나의 시화전(詩畵展)이 열리기로 되어 있었다. 그때가 여름이었다. 그때 내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내 본명은 ‘김영일(金英一)’인데 문단에 이미 같은 이름의 문사들이 여럿 있었다. 당시 서울대 학생이 개인 시화전을 여는 것은 마치 시집을 한 권 내는 것만큼 ‘준문단적’, 혹은 ‘준준문단적’ 사건이었는지라 아무래도 필명(筆名)이 하나 필요했던 것이다. 그랬다. 그런데 그런 어느 날 동아일보사에서 일하던 한 선배가 점심때 소주를 사줘서 실컷 먹고 잔뜩 취해가지고 거기서 나와 동숭동 대학가의 아지트였던 바로 그 음악다방으로 가려고 호주머니를 뒤지니 돈도 버스표도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걷기로 했다. 여름 한낮의 태양은 뜨겁고 술은 오를 대로 올라 비틀거리며 종로길을 갈지 자로 걸어오던 때다. 그 무렵 막 유행하기 시작한 것이 있었는데, 요즘에도 흔한 것이지만 길가에 자그마한 입간판이 주욱 늘어선 것이다. 다방, 이발소, 이용실, 뭐 그런 것들의 입간판인데 술김에도 괴상하게 여긴 것은 그 간판 위쪽에 다 똑같은 자그마한 검은 가로 글씨로 모두 한글로 ‘지하’라고 하나같이 써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지하실에 다방, 이발소, 이용실이 있다는 얘긴데 왜 하필 그 글자만은 유독 똑같은 한글, 똑같은 검은 글씨로 맨 위쪽에 가로로 조그맣게 써 있느냐는 것이다. 그런 똑같은 것들이 여기도 ‘지하’ 저기도 ‘지하’ 저기만큼 가서도 또 ‘지하’, ‘지하’, ‘지하’! 그야말로 도처에 유(有) ‘지하’였다. ‘옳다! 저것이다! 저것이 내 필명이다!’ 이렇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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