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훈(趙芝薰 1920 - 1968)
<이력>
1920.12.3. 경북 영양군 일월면 주곡동 출생. 본명은 동탁(東卓). 부 趙憲泳(제헌 및 2대 국회의원, 6.25 때 납북됨) 모 柳魯尾의 3남 1녀중 차남. 조부 趙寅錫으로부터 한학 수학, 영양보통학교. 혜화전문학교(현 동국대) 문과 졸업(1941). 불교전문 강원(오대산 월정사(月精寺)) 강사를 거쳐 조선어학회(한글학회) 큰사전 편찬원(1942). 조선문화 건설협회원(1945), 명륜(明倫)전문 강사(1945),경기여고교사(1946), 서울여의대 교수(1946). 전국문필가협회 중앙위원(1946), 청년문학가협회를 창립, 고전문학부자역임(1946), 동국대강사(1947), 1947년부터 고려대 문과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소 초대 소장으로 활동, 문총(文總) 구국대 기획위원장(1950), 종군문인단 부단장(1950), 민권수호 국민총연맹 중앙위원(1959), 공명선거 추진위원회 중앙위원(1959), 국제시인 벨지움 회의 한국대표(1961. 9), 민족문화 연구소장(1963), 민족문화 추진위원회 편집위원(1966), 한국시인협회장(1968) 역임. 박목월, 박두진과 함께 [청록집]을 내어 청록파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청년문학가협회 등 우파진영의 선두에 서서 좌익과의 투쟁을 했다. 고려대 문리대교수로 재직중 타계(1968.05.17).
<작품 경향>
정지용의 추천을 받아 [문장]에 <고풍의상>(1939. 4.)과 <봉황수>(1940. 2.)를 발표하면서 등단하였다. 이시기 시인은 동인지 [백지(白紙)](1940. 통권 3집)를 발간하며 고전적 소재에 전아(典雅)하고 세련된 시풍으로 주목과 찬사를 받았다.
박두진, 박목월과 함께 청록파(靑鹿派)로 불리는 계기가 된 [청록집(靑鹿集)](1946)에서 한국 전통의식과 민족의식을 서정적 대상으로 삼는 초기의 시적 성과를 이루어 내었다.
해방 직후 순수한 시정신을 지키는 사람만이 시인으로 설 수 있음을 강조하면서 개성의 자유를 옹호하고 인간성의 해방을 추구하는 것이 시의 본질이라 주장한 시인은 시집 [역사 앞에서]에서 문학의 순수성과 민족적 열정을 토로하며 당대 정치의 부패상과 사회적 부조리, 민족 분열과 동족 상잔이라는 타락한 현실을 투철한 역사의식 속에서 지사적인 목소리로 비판하였다.
민족적 정서나 전통에 대한 향수를 읊고 불교적 선을 주요 주제로 선택했던 그의 시는 당시(唐詩)의 영향이 짙게 배여 있다. 이러한 초기의 민족정서, 전통향수, 불교선미(禪味)를 주조로 하던 시풍과 문학정신은 6.25를 거치며 조국의 역사현실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바뀌어 갔으며 이러한 시각의 전환은 1950년대 말 현실 정치와 연결되는 시인의 사회활동 뿐 아니라 문학작품에서도 나타나는데 시집[다부원에서]는 전쟁의 참상을 체험한 바탕 위에서 동족상잔의 비극적 국면을 절실하게 묘사한 전쟁시의 백미로 꼽힌다.
고전문학의 연구와 한국문화 일반에 대한 깊은 통찰을 바탕으로 [한국문화사서설]과 시집 [청록집](1946), 첫 개인시집인 [풀잎 단장](1952.11. 1), [조지훈 시선](1956.12.15), [역사 앞에서](1959), [여운](1964) 및 수필집 [창에 기대어](1958), [시와 인생](1959), [지조론](1962), [돌의 미학](1964) 등을 간행하였다.
<대표작>
시집에 <청록집>(1946), <풀잎 단장>(1952), <조지훈 時選>(1956), <역사 앞에서>(1957) , <여운(餘韻)>(1964) 등이 있음.
수상록으로 <창에 기대어>(1956)가 있고, 시론집 <시의 원리>(1959), 수필집 <시와 인생>(1959), 번역서 <채근담(菜根譚)>(1959)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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