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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자료실/한국의문인

이광수(李光洙)의 생애와 작품 활동

by 황소 걸음 2016. 6.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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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李光洙 1892. 2. 1 - ? )

 

[생애]

  시인.소설가.평론가.언론인.아명 보경(寶鏡).호 춘원(春園). 장백산인 평북 정주군 길산면 광동리에서 출생 .10세당시 고아가 되어 방랑생활중 소공동소학교 일어학 메이지학원 중학부 졸업(1910). 귀국하여 오산(五山)학교 교원으로 있다가 재차 도일하여 와세다대학 철학과에 입학,잠시 북경에 갔다가 다시 도일하여 조선독립단조직.조선독립선언서를 작성하여 선언대회를 열었고,그 즉시 상해로 탈출하여 임시정부에 참가,기관지 (독립신문)의 편집국장겸 사장.임정사료편찬위원주임.응사단 단원으로 활동중 귀국,동아일보사 편집국장(23),조선일보부사장(33),1937년 경부터 친일행위로 기울어졌음.조선문인협회 회장(39) 6.25 당시 납북되어 (50) 생사 불명.

 

[작품활동] 
  1909년경 일문의 소설 '사랑인가' 최초작품이며, 그후 1910년에 시 '곰'이 <소년>에 발표되었다. 시조로는 매일 신보에 연재(1917.6.26~ ) 한 '오도답파 여행기 (五道踏破旅行記)'를 위시하여 '시조의 자연율(1928)' '시조의 의적구성(1928)'등이 있어,시조 부흥운동의 초석이 된 이론을 다수 발표하기도 했다.

 

[주요 저서]

<금강산유기(24)>,<춘원단편집(27)>,<3인가사집(30)>,<춘원시가집(40)>,<춘원문장독문(37)>,<시조50수(39)>,<수필과 시가(39)>,<문학과 평론(40)>등이 있고, 주요 논문으로는 /금일 아한청년의 경우 천재야 천재야/민족개조론/민요소고/우리 문예의 방향/육당 최남선론/조선문학의 개념/조선의 문학/문학과 문사와 문장/문학론 등이 있다.

[참고자료]

日천황의 신민임을 자처 - 일본명 가야마 미쓰로(香山光郞)

-친일 행각
* 2차 대전 말기 일제의 국민총동원 계획에 참여하여 1943년 12월 일본 유학생의 학병지원 권고강연에 나섬
* 조선 문인협회 회장과 내선일체의 실천을 위하여 일본정신을 깨닫고 황도를 따르자는 황도학회 발기인 대표를 비롯, 임전대책 협의회, 조선임전보국단, 대동아문학자대회, 조선문인보국회, 대화동맹, 조선언론 보국회, 대의당 등 친일 단체에 참여하여 황국 신민화, 징병·징용· 학병·정신대 권고문 따위의 많은 글을 써 민족을 배반하는 행동을 하기도 하였다.
* 민족개량과 문화주의로 일관하던 춘원은 1937년 일제의 동우회(수양동우회가 1929년부터 동우회로 명칭이 바뀜)사건 구속에 걸려 옥고를 겪지만 이내 병보석으로 풀려나는 한편, 정신적인 지주 도산의 타계(1938)에 직면한다. 이어 그는 1939년 중국의 일본군 위문을 위한 모임(북지황군위문작가단) 결성식의 사회를 맡게 되고, 이를 계기로 본격적인 제3단계의 친일행위로 들어선다.
즉, 춘원의 친일은 제1단계가 1919년 이전까지로 이 시기는 주로 통치권자에 대한 관념적인 협력 정신으로 볼 수 있고, 제2단계는 상하이로부터의 귀국 이후로 자신의 이상과 현실적인 욕구가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이념 체계인 민족개량주의와 문화주의의 실현을 주장하던 때이며, 이어 제3단계는 1939년 이후로 이 때는 전시협력체제로 흔히들 친일이라고하면 이 시기에 국한시키는 경향이 있으나 오히려 그 앞 시기가 더 중요한 역사적인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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