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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자료실/한국의문인

이상(李箱)의 생애와 작품세계

by 황소 걸음 2017. 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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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상 李箱 (1910-1937)

 

<생애>
 시인.소설가. 본명 김해경(金海卿). 서울 출생. 보성고보(普成高普)를 거쳐 경성고공(京城高工) 건축과를 나온 후 총독부의 건축기수가 되었다. 1931년 처녀작으로 시 '이상한 가역반응(可逆反應)' '파편의 경치'를 《조선과 건축》지에 발표하고, 1932년 동지에 시 '건축무한 육면각체(建築無限六面角體)'를 처음으로 ‘이상(李箱)’이라는 이름으로 발표했다. 이상이라는 이름을 쓰게 된 것은 공사장 인부들이 그의 이름을 잘 모르고 ‘리상(李씨)’이라고 부르니까 그대로 ‘이상’이라고 했다지만 학교 때의 별명이라는 설도 있다.
  1933년 폐결핵에 의한 각혈로 총독부 기수직을 버리고 황해도 배천온천으로 요양을 가게 되며 이때부터 그는 폐병에서 오는 절망을 이기기 위해 본격적으로 문학을 시작했다. 이 곳 휴양지에서 그는 기생 금홍을 알게 되고 금홍과 함께 서울로 돌아와 백부가 물려 준 통인동 집을 처분,'제비'라는 다방을 차렸다. 이 무렵부터 격심한 고독과 절망, 그리고 자의식에 침전돼 수염과 머리를 깎지 않은 채 거리를 활보하기도 하고, 온종일 어둠침침한 방에 박혀 술만 마시기도 하였다.1934년 난해시 '오감도(烏瞰圖)'를 조선중앙일보에 연재하기 시작했으나 독자들의 빗발치는 항의로 중단했다. 잇단 사업의 실패와 병고로 말미암아 그는 이미 정신적 황폐를 겪고 있었고,몸도 극도로 쇠약해졌다. 그는 아우 운경의 청소부 봉급으로 생활을 지탱해 갔으며 셋방을 전전 방세를 못내 거리로 쫓겨나기도 했다. 1936년 <조광>에 단편소설 '날개'를 발표함으로써 시에서 시도했던 자의식을 소설로 승화시켰다. '날개'는 그의 첫사랑 금홍과 2년여에 걸친 무궤도한 생활에서 얻어진 작품으로 그 자신의 자화상이라고도 할수 있는 <박재된 천재>의 번득임이 나타나 있다. <날개>를 발표할 무렵 같이 폐를 앓고 있던 작가 김유정과 함께 자살을 기도한 적도 있었다. 1936년 여름,친구인 화가의 여동생과 돈암동 홍천사에서 결혼했으나 생활은 비참했고 몸은 극도로 쇠약해져 갔다. 같은 해에 '동해(童骸)', '봉별기(逢別記)' 등을 발표하고 폐결핵과 싸우다가 갱생(更生)할 뜻으로 도쿄행[東京行]을 결행한다. 이듬해 토쿄 거리를 굶주림과 병마에 시달리며 배회하다 사상불온 혐의로 일경에 체포되었으나, 병보석으로 풀려 났고 자기 생활의 결산과도 같은 장편 '종생기' 1편을 남기고 1937년 4월 17일 도쿄대학 부속병원에서 병사하였다. 
  주요 작품으로는 소설 '지주회시(會豕)', '환시기(幻視記)', '실화(失花)' 등이 있고, 시에는 '이런 시(詩)'. '거울', '지비(紙碑)', '정식(正式)', '명경(明鏡)', 수필에는 '산촌여정(山村餘情)', '조춘점묘(早春點描)', '권태(倦怠)' 등이 있다. 1957년 80여 편의 전 작품을 수록한 《이상전집(李箱全業)》 3권이 간행되었다.

<작품 세계>
  이상은 그 당시 유럽(특히 프랑스를 중심으로 함)에서 유행했던 초현실주의 기법을 시에 도입하여 쓴 거의 최초의 시인이라고 할 수 있다. 초현실주의 기법을 통해 분열된 자의식 세계의 탐구에 주력했고, 숫자와 기하학적 낱말, 관념적 한자로 구성된 특이한 작품을 주로 썼다. 특히 위의 '거울' 뿐만 아니라, '오감도', '꽃나무' 등 주요 시들에서 볼 수 있듯이 행간의 띄어쓰기를 하지 않는 등 독특한 수법을 많이 썼다. 이러한 시의 구성의 파격과 독특함 때문에 그는 26년의 짧은 인생에도 불구하고 '천재'라는 평을 받았으며, 후세의 시 문화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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