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현대문학자료실/현대시자료실

서시/윤동주/현대시-이해와 감상_by황소걸음

by 황소 걸음 2017. 2. 12.
반응형

윤동주 <서시(序詩)> 이해와 감상_by황소걸음

 

 

 

    서시(序詩)
                                          윤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해설>
  이 시는 해방 후 간행된 윤동주의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첫머리에 놓여, 참답고 올곧은 삶을 지향했던 시인의 정신을 대변해 주는 명시(名詩)이다. ‘과거(1~4행) - 미래(5~8행) - 현재(9행)’의 시간 순서를 축으로 하여 자기 양심 앞에 추호도 부끄럽지 않게 살려는 화자의 내적인 번민과 간절한 소망을 잘 형상화하고 있다.

<핵심 정리>
* 형식 : 자유시, 서정시
* 성격 : 성찰적, 고백적, 의지적
* 심상
: 별과 바람의 시각적 심상
* 제재 : 별(이상의 세계, 순수한 양심)

주제 : 부끄러움 없는 삶에 대한 간절한 소망
* 특징 : ① 대조적 심상의 부각 ― (별과 바람)
            ② 서술과 묘사에 의한 표현
            ③ 자연적 소재의 상징화

* 출전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1948) 
구성 : ① 삶의 부끄러움과 괴로움(1-4행) - 과거
            ② 미래의 삶에 대한 결의(5-8행) - 미래
            ③ 현재의 상황적 갈등(9행) - 현재

<시어, 시구 연구>

서시(序詩) : 책의 첫머리에 서문 대신으로 쓴 시.

⊙ 하늘을 우러러 ⇒ '하늘'은 삶의 지향점, 절대적 영역을 상징함.
⊙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 '별'은 소망, 이상, 어둠과 바람속에서도 결코 꺼지거나 흐려지지 않는 순수하고 결백한 삶, 양심,구원의 지표를 상징함.
⊙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 '나한테 주어진 길'은 민족을 위한 삶의 길로 볼 수 있으며, 화자의 소명의식이 드러나는 의지적 표현이다.
⊙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밤'은 일제하의 현실, '별'은 소망과 이상, '바람'은 현실적 시련을 뜻한다.

<시인 연구> - 아래의 성명을 누르세요.

  윤동주


<참고 사항>

  서시 - 윤동주 - 평론

   개화 이전의 우리 조상들은 성조기를 화기(花旗)라고 불렀던 모양이다. 그 별 모양을 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고구려 벽화의 성좌도(星座圖)를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원래 한국의 별은 단추처럼 둥근 모양을 하고 있었다. 이제는 아이들이 먹는 별사탕에서 장군들의 계급장에 이르기까지 그 별표 모양은 우리에게도 아주 친숙해졌지만 그것이 인체(人體)를 도안화한 것이라는 사실은 아직도 생소한 것같다. 펜터그램(☆표)은 위로 솟은 머리와 수평으로 올린 두 손, 그리고 양쪽으로 벌린 두 다리의 모습을 표시한 것으로 人體와 天體(별)를 동일시하고자 한 인간이 비원을 담고 있다. 그러고 보면 별표 밑에는 인간의 수명을 관장하는 칠성 싱앙이나 [별 하나 나 하나]라고 노래한 우리 민요의 정서와도 통하는 구석이 있다.
  윤동주의 '별'(시) 읽기에서 우리가 지금까지 사용해 온 틀은 기독교적 사상이 아니면 일제에 대한 저항시인이었지만, 실제로 그 [서시]나 [별 헤는 밤]에 나타난 것들은 그보다 훨씬 고태형(古態形)을 지닌 별이다. [서시]가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의 인유(引喩)로부터 시작하고 있는 것만 해도 그렇다. 고전을 들출 것도 없이 그것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무엇을 다짐하거나 자신의 결백성을 주장할 때 곧잘 쓰는 말이다. 그러니까 그 하늘은 특정한 종교성보다는 소박한 민간신앙의 경천(敬天)사상이 깃들어 있다. 그리고 그것은 神보다도 하늘-땅으로 대응해 온 신화적 공간의 무대에 가까운 그 하늘인 것이다.
  그러므로 1-2행의 하늘 다음에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 나는 괴로워 했다]의 3-4행이 짝을 이룬다. 하늘은 땅, [우러러]보다는 [굽어보다]로 그 공간을 교체하면 잎새에 이는 바람이 출현하게 된다. 그래서 하늘을 우러를 때의 그 무구한 마음(부끄러움이 없기를)이 땅을 향할 때에는 그 잎새에 이는 바람을 보고 괴로워하는 마음으로 변한다.
  그리고 다시 땅에서 하늘로 공간을 바꾸면 그 잎새는 별이 되고 그 괴로움 역시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반전된다. 이렇게 하늘-땅으로 교체되는 윤동주의 시선과 마음은 마치 정교한 대위법(對位法)으로 구성된 음악처럼 [하늘의 별]과 [땅의 잎새]를 완벽하게 연주해 낸다.
  그래서 [하늘]은 [별]로 응축되고, [잎새]는 [모든 죽어가는 것]들로 대치되면서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5-6행)라는 새로운 하늘-땅의 관계가 나타난다. 그러면서 놀랍게도 [괴로워했다]가 [사랑해야지]로 바뀐다. [잎새]와 [모든 죽어가는 것]들은 동격인데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감정은 부정에서 긍정으로 역전되어 있는 것이다. 괴로움이 사랑으로 바뀌는 드라마는 지금까지 하늘과 땅, 별과 잎새의 대립항을 이룬 병렬구조를 통사축의 사슬관계로 눈을 돌리게 한다. 즉 지금까지 관계없이 보였던 ①부끄럼이 없기를 [다짐하다] ②풀잎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다] ③별을 [노래하다] ④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하다]가 일련의 계기성(繼起性)을 지닌 사슬구조로 연결되는 것이다.

  그래서 [서시]의 공간구조가 하늘, 땅, 바람의 삼원구조로 되어 있듯이 그 시간구조 역시 과거(1-4행[괴로워했다]), 미래(5-8행 [[사랑해야지] [걸어가야겠다]), 그리고 현재(9행 [스치운다])로 삼등분된다.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7-8행)는 직설적인 산문적 표현에도 불구하고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길]은 바로 [서시]의 병렬구조와 통사구조를 결정짓는 중요한 매개항으로 공간(하늘-땅)과 시간(어제-내일)을 통합하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길은 공간에 속해 있지만 화살표와 같이 방향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과거에서 미래로 가는 시간성을 표시하기도 한다. [나에게 주어진 길]이라고 할 때는 과거의 시간을 나타내지만 [걸어가야겠다]라고 할 때의 그 길은 [사랑해야지]와 마찬가지로 의지와 행동을 내포하고 있는 미래의 시간으로 출현한다.
  그 길은 공간성으로 볼 때에는 땅(잎새)에서 하늘(별)로 오르는 언덕길 같은 것이 될 것이며, 시간성으로 볼 때에는 과거(괴로움)에서 미래(사랑해야지)로 향하는 그 도상(途上)의 현재가 될 것이다.
  그래서 [서시]는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로 끝맺고 있다. 일행으로 단독 연(聯)을 이루고 있는 이 시행은 본문으로부터 외롭게 떨어져 나가 앉은 섬처럼 보인다. 앞의 시들이 과거나 미래형으로 되어 있는데 비해서 이 마지막 연(聯)만이 [스치운다]로 현재형이다. 그냥 현재가 아니라 [오늘밤에도]라는 [도]의 조사가 의미하듯이 그것은 끝없이 반복하고 있는 [오늘]인 것이다. 지금 나의 눈앞에 있는 것은 밤과 바람, 그리고 별이다. 공교롭게도 모두가 [ㅂ]음으로 시작되어 있는 이 세가지 단어들은 서로 뗄 수 없는 관계로 얽혀있다.
  어둠과 빛은 대립된 개념이지만 별빛은 밤의 어둠 없이는 빛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동전의 양면처럼 분리할 수 없는 관계로 밀착되어 있다. 그리고 별빛과 결합된 어둠은 부정축에서 긍정축으로 그 의미의 화학변화를 일으키기도 한다.
  바람 역시 그렇다. 땅의 잎새와 하늘의 별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서로 접촉할 수가 없지만, 그 단절을 메워주는 것이 바로 그 바람이다. 풀잎에 이는 바람은 저 무한한 높이의 별들을 스치는 바람이기도 한 것이다. [일다]와 [스치다]라는 한국말이 이렇게도 절묘하게 어울린 예를 우리는 일찍이 보지 못했다. 밤을 통해서 별을 만나듯 바람을 통해서 풀잎은 별과 만난다. 하늘과 땅 사이를 매개하고 있는 바람은 [길]과도 같은 기능을 하고 있다. 그것은 소멸의 잎새와 불멸의 별 사이의 바람부는 공간, 그리고 끝없이 되풀이 되는 [오늘]이라는 그 도상성(途上性)이다. 하지만 '괴로워하다'가 '노래하다'로, '노래하다'가 '사랑하다'로, 그리고 '사랑하다'가 '걷다'(실천하다)로 바뀌어가는 행동은 별과의 스침을 통해서 가능해진다. 별은 바람과 밤의 부정적 상황을 긍정적으로 들려주는 낮은음자리표이며 지상적인 언어의 네가를 반전시키는 감도높은 인화지인 것이다.

  만약 윤동주의 별을 일제에 대한 저항의 시각으로만 바라보면 어떻게 될 것인가. [잎새]는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고통받고 있는 한국민족이 될 것이고, 바람과 그 밤은 일제의 압제(壓制)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별은 광복의 별이다. 그렇게 되면 [모든 죽어가는 것들]에 대한 사랑은 민족애(民族愛)로 축소되고 만다.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는 말 역시 끝까지 투쟁하겠다는 맹세로 들린다.
  반대로 기독교적인 시각에서 보면 잎새와 [모든 죽어가는 것]들은 원죄를 지은 모털(Mortal)로서의 인간이 되고 그 안에는 일제 관헌들까지도 포함된다.
  그러므로 [사랑해야지]라는 말은 기독교의 박애(博愛) 정신과 직결되고 그 길 역시 신앙의 길이 된다. 그 결과로 종교와 정치는 양립할 수 없는 두 개의 별을 만들어 내고 만다. 그 어느 시각으로 보아도 우리가 [서시]에서 읽는 그 별 이야기와는 분위기가 맞지 않는다. 그러나 인체의 모양이 그대로 빛나는 천체(별)의 모양과 하나가 되는 펜터그램이 그 도형처럼 작은 잎새들이 하늘의 별자리가 되어 빛나는 신화의 마당에서는 그런 모순들이 모두 사라진다.
  그리고 그 [서시]는 정치론이나 종교론이 아니라 고통에서 사랑을, 그리고 어둠에서 빛을 탄생시키는 희한한 시의 마술… [별을 노래하는 마음]의 시론(詩論)이 되는 것이다.      <이어령 교수>

 

 

꿀팁_ 좋은 국어자료 빨리 찾는 방법

 

좋은 국어 자료가 필요할 때는 다음(daum) 검색에서 찾고자 하는 검색어 앞이나 뒤에 '황소걸음'을 추가해 보세요.

예를 들어 윤동주의 '서시'에 대한 자료를 찾을 때 '황소걸음 서시' 또는 '서시 황소걸음' 이런 식으로 검색하시면

황소걸음 블로그의 충실한 자료를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