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잎 단장(斷章)
조지훈
무너진 성터 아래 오랜 세월을 풍설(風雪)에 깎여 온 바위가 있다. 아득히 손짓하며 구름이 떠 가는 언덕에 말없이 올라서서 한 줄기 바람에 조찰히 씻기우는 풀잎을 바라보며 나의 몸가짐도 또한 실오리 같은 바람결에 흔들리노라.
아 우리들 태초의 생명의 아름다운 분신으로 여기 태어나, 고달픈 얼굴을 마주 대고 나직이 웃으며 얘기하노니
때의 흐름이 조용히 물결치는 곳에 그윽이 피어오르는 한떨기 영혼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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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이 시는 조지훈의 첫 시집인 <풀잎 단장>의 표제시이다. 이 작품에서 시인은 우리 자신의 모습이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풀잎의 모습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 풀잎과 같은 연약한 존재이면서 한편으로 이 넓은 세상 안에 태어나 조그만 바람결에도 흔들리며(번뇌하며)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며 살아 간다. 즉 풀잎의 모습을 통해 자기 자신의 모습을 새로이 발견한다.
<핵심정리>
* 갈래 : 자유시, 서정시
* 성격 : 관조적, 사색적, 선(禪)적
* 어조 : 그윽한 어조
* 제재 : 풀잎
* 주제 : 생명에의 외경(畏敬)(자연의 모습 →인간의 모습)
* 구성
[1] : 무너진 성터, 풍설에 깎여온 바위
[2] : 풀잎을 바라보는 서정적 자아의자세
[3] : 고달픈 세사에도 위안하며 사는 삶
[4] : 생명에의 외경
* 출전 : 시집 ‘풀잎 단장’(1952)
<시어 시구 연구>
⊙ 단장-완전한 체계를 갖추지 못한 글. 자신의 작품에 대한 겸손의 표현이다.
⊙ 조찰히-조촐히 아담하고 깨끗하게
⊙ 태초(太初)-천지가 개벽한 맨 처음
⊙ 분신(分身)-한 주체에서 갈라져 나온 것
⊙ 무너진 성터 아래~깎여 온 바위가 있다 : 풀잎이 피어 있는 공간을 제시한 시구이다. '무너진 성터'와 '풍설에 깎여 온 바위'의 대응은 인간사의 무상함과 자연사의 영원함을 대조적으로 제시해 주는 객관적 상관물이다.
⊙ 아득히 손짓하며 구름이 떠 가는 언덕에 : 바위와 아득히 손짓하며 떠 가는 구름의 결합은 자연 속에서 지속과 변화라는 두 원리를 상대적으로 보여 준다.
⊙ 한 줄기 바람에 조찰히 씻기우는 풀잎을 바라보며 : 한 줄기 바람에 산뜻하고 깨끗하게 온갖 고뇌를 씻어 버리는 것 같은 서정적 자세를 표현한 시구로, 여기서 '풀잎'은 주어진 숙명대로 한 자리에 붙박혀서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면서도 시간의 흐름에 그 영혼을 내맡기는 자세를 보여 준다.
⊙ 나의 몸가짐도 또한 실오리 같은 바람결에 흔들리노라 : 무너진 성터의 바위 틈에서 바람에 씻기우는 풀잎을 보며 동화의 감정을 느끼고 있다.
⊙ 아 우리들 태초의 생명의 아름다운 분신으로 여기 태어나 : '나'에서 '우리'로 시상의 전환이 이루어지고 영탄조로 바뀐다. 여기서 인간과 풀잎의 화음은 바로 자연대와 일치된 시인의 따뜻한 인간애의 표현이다.
⊙ 고달픈 얼굴을 마주 대고 나직이 웃으며 얘기하노니 : 조그만 세파에도 흔들리는 고달픈 삶을 살면서도 서로 위안하며 사는 삶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 때의 흐름이~한 떨기 영혼이여 : 세사의 큰 변화와 무관하게 하나의 생명을 키우는 풀잎에의 외경심을 표현하고 있다.
<황소 감상>
이 시는 그의 첫 시집 <풀잎 단장>의 표제로서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풀잎을 새롭게 조명하여 생명의 신비감을 노래한 작품이다. 풀잎이란 단순히 하찮은 존재가 아니라, 생명의 신비를 간직한 우주적 존재이다. 그런 측면에서는 인간도 마찬가지이다. 아주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는 풀잎과도 같이 조그만 고통에도 동요하고 번뇌하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 아닌가. 이렇게 시인은 풀잎을 통해 우리로 하여금 자신과 자연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하고 있다. 결국 이 시는 화자가 자신의 반성적 타자(他者)로 설정한 풀잎을 통해 주어진 운명대로 한 자리에 붙박여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면서도 '고달픈 얼굴을 마주 대고 나직이 웃'는 여유로움 속에서 시간의 흐름에 지친 영혼을 내맡기는 삶의 태도를 보여 주고 있는 작품이다.
<시인 연구>- 아래의 성명을 누르세요.
<참고 자료>
<생각해 볼 문제>
(1) 이 시에서 시상의 전환이 이루어지는 행을 찾아보자.
-> 5행 - '나'에서 '우리'로 시상이 전환된다.
(2) 시적 화자가 생명 현상에 대해 경건한 동화의 감정을 표현하고 있는 부분을 찾아보자.
-> 나의 몸가짐도 또한 실오리 같은 바람곁에 흔들리노라.
(3) 이 작품에 드러난 '풀잎'의 자세를 생각해 보자.
-> 풀잎은 주어진 숙명대로 한 자리에 붙박혀서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면서도 시간의 흐름에 그 영혼을 내맡기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4) 이 시에 드러난 시적 자아의 심리적 태도를 살펴보자.
-> 의연(毅然)함, 담담(淡淡)함, 고고(孤高)함, 경건(敬虔)함
(5)이 시에서 자연의 원리가 지속과 변화라는 두 가지 법칙에 근거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말해 주고 있는 시어를 찾아보자.
-> 바위, 구름 - 풍설에 깎여 왔지만 한 곳을 지키고 있는 '바위'는 변하지 않는 자연이며, 아득히 손짓하며 떠 가는 '구름'은 늘상 변화하는 자연이다. 이 둘의 대조는 자연의 원리가 지속과 변화라는 두 가지 법칙에 근거하고 있음을 말해 준다.
(6) 인간사의 무상함과 자연사의 영원함을 대조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시구를 찾아보자.
-> 무너진 성터, 풍설에 깎여 온 바위
(7) 이 시에서 '풀잎'의 역할을 생각해 보자.
-> 인생과 자연의 섭리를 일깨우는 소재
(8) 이 시에서 '풀잎'과 시적 자아의 동질성을 암시한 시행을 찾아보자.
-> 아 우리들 태초의 생명의 아름다운 분신으로 여기 태어나 - '풀잎'이나 시적 자아는 모두 '태초의 생명의 아름다운 분신'으로 파악된다.
(9)이 시에 등장하는 '풀잎'의 이미지와 김수영의 '풀'에 나오는 것과 비교해 보자.
-> 김수영의 '풀'이 '바람'과 대립하면서 한편으로는 의존하는 모순된 관계 속에서 점차 자신의 존재를 확장하고 심화시켜 가는 존재인 데 비해(김수영의 '풀'이 흔히 민초나 민중의 의미로 해석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 시의 '풀잎'은 자연과 우주의 섭리에 순응하면서 자재(自在)하는 존재이다. 또 '풀잎'과 '바람'의 관계 또한 김수영의 작품과는 달리 대립적이지 않고 이 시는 조화롭게 설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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