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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문학자료실/고전시가

서동요/무왕/향가-이해와 감상_by황소걸음

by 황소 걸음 2017. 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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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요(薯童謠)'에 대해 알아보기


<서동요의 내용>

<현대어 풀이>

 선화공주님은
 남 몰래 정을 통해 두고
  맛둥방(서동)을
 밤에 몰래 안고 가다.


<서동요 해설>

  백제 무왕의 노래인 '서동요'는 일종의 참요(미래의 역사적 사건을 예언하는 민요)로, 진평왕(재위 579-632)의 딸 선화공주를 차지하기 위해 서동이 불렀다고 전한다. 그러나 남녀간의 사랑을 내용으로 했던 동요적인 민요가 후대에 전승되며 변화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서동이 백제의 무왕이 되었다거나 선화 공주가 진평왕의 딸이라는 것은 이 이야기가 실제 일어난 것처럼 보이게 하는 증거물로서의 의미를 가지며, 신분제 사회의 엄격한 벽을 뛰어넘고자 하는 백성들의 소망이 담긴 것이라 볼 수 있다.

 

 <작품 개요>
ball03a.gif 연대 : 신라 26대 진평왕(6세기)
ball03a.gif 작가 : 서동(백제 무왕)
ball03a.gif 형식 : 4구체 향가, 동요
ball03a.gif 성격 : 참요(讖謠)적, 직설적, 주술적, 동요적, 동화적
ball03a.gif 주제 : 선화 공주의 부정한 사랑, 아내를 얻기 위한 계략
ball03a.gif 내용 : 선화 공주를 아내로 맞기 위하여 선화 공주의 거짓 비행을 계략적으로 퍼뜨림.
ball03a.gif 의의 : ① 현전  최고(最古)의 향가 작품
           ② 배경설화에 신화적인 요소가 있는 향가
           ③ 향가 중 민요체를 대표하는 작품
           ④ 동요가 향가 형태로 정착된 작품

ball03a.gif 출전 : 삼국유사(三國遺事), 권2, 무왕(武王)


잠깐


   얼다 : '정을 통하다, 혼인하다'의 뜻으로 이것으로 인해 참요적 성격을 지님
   참요(讖謠) - 미래의 역사적 사건을 예언하는 노래

        

  제 30대 무왕(武王)의 이름은 장(璋)이다. 그 모친이 과부가 되어 서울 남쪽의 못가에 집을 짓고 살던 중, 그 곳의 용(龍)과 교통(交通)하여 아들을 낳았다. 아명(兒名)을 서동(薯童)이라 하였는데, 그 도량(度量)이 커서 헤아리기가 어려웠다. 항상 마를 캐서 살았으므로 국인(國人)이 이에 의하여 이름을 지었다.
  신라 진평왕의 셋째 공주 선화(善化)가 아름답기 짝이 없다는 소식을 듣고 서동은 머리를 깎고 서울로 갔다. 동네 아이들에게 마를 먹이니 아이들이 친해서 따르게 되었다. 이에 동요를 지어 아이들을 꾀어서 부르게 하였는데, 그 노래에 '선화 공주님은 남몰래 얼어두고 서동방을 밤에 몰래 안고 가사'라 하였다. 동요가 서울에 퍼져 대궐에까지 알려지니 백관이 임금에게 극간(極諫)하여 공주를 먼 곳으로 귀양 보내게 하였다.
  장차 떠나려 할 때에 왕후가 순금 한 말을 노자로 주었다. 공주가 귀양처로 가는데 서동이 도중에서 나와 맞이하며 시위(侍衛)하여 가고자 하였다. 공주는 그가 어디서 온 지는 모르나 우연히 믿고 기뻐하여 그를 따르게 되었다. 그 후에야 서동의 이름을 알고 동요의 맞는 것을 알았다.
  백제로 와서 어머니가 준 금을 내어 생계를 꾀하려 하니 서동이 크게 웃으며 "이것이 무엇이냐."하였다. 공주가 "이것은 황금이니 가히 백 년의 부를 이룰 것이다."하니 서동은 "내가 어려서부터 마를 파던 곳에 흙과 같이 쌓아 놓았다."하였다. 공주가 듣고 크게 놀라 "그것은 천하의 지보(至寶)니 지금 그 소재를 알거든 그 보물을 가져다 부모님 궁전에 보내는 것이 어떠하냐"고 하였다. 서동이 좋다 하여 금을 모아 구릉과 같이 쌓아 놓고 용화산 사자사(獅子寺)의 지명 법사(知命法師)에게 가서 금을 옮길 방책을 물었다. 법사는 "내가 신력(神力)을 써서 보낼 터이니 금을 가져오라."하였다. 공주가 편지를 써서 금과 함께 사자사 앞에 갖다 놓으니 법사가 신력으로써 하룻밤 사이에 신라 궁중에 갖다 두었다. 진평왕이 그 신비한 변화를 이상히 여겨 더욱 존경하며 항상 편지를 보내어 안부를 물었다. 서동이 이로부터 인심을 얻어 왕위에 올랐다.



  이 노래는 일종의 참요(讖謠)로, 서동이라는 사랑에 빠진 한 소년이 자신이 갈망하는 내용을 선화 공주라는 상대편에 전가시켜 노래한 것이다. 주객을 전도시킨 수사적 특징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으며, 국경을 뛰어 넘고 신분의 귀천을 초월한 낭만적인 한 소년의 사랑 이야기를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꿈이 결국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신분을 초월하고자 하는 당시 민중들의 소망을 엿볼 수도 있다. 어린 아이들이 부르는 동요의 형태를 띠고 있어 간결하고 소박한 표현을 사용하고 있으며, 사랑을 위해 목숨을 건 고대인들의 강한 정열과 순진하고 발랄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1. 이 노래에서 결혼의 의미

  엄격한 계급 분화가 이루어진 시대에 상하층의 관계를 갈라 놓는 사회적 장벽에 불만을 나타내면서, 예전에는 이런 자유로운 상하의 교통이 있었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드러내기 위하여 설정된 사건으로 볼 수 있다. 서동이 백제의 무왕이 되었다거나 선화 공주가 진평왕의 딸이라는 것은 이 이야기가 실제 일어난 것처럼 보이게 하는 증거물로서의 의미를 가진다.

2. 백제 무왕(武王, ?~641)

  백제 제 30대 왕. 재위 600-641년. 이름은 장(璋). 신라의 변경을 자주 공략했고, 고구려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노력했다. 수와 그 다음의 당에 조공(朝貢)하였으며 만년에는 궁성 남쪽에 연못을 파고 유흥지로 삼는 등 사치와 유흥을 일삼았다.
  백제 무왕의 어릴 때 이름은 "말자(末子, 막둥)"였다. 무왕을 "말통대왕(末通大王)"이라고 한 근거도 그의 아명이 "막둥(맛둥)"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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