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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죽지랑가/득오/향가-이해와 감상_by황소걸음

by 황소 걸음 2017. 1.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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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득오, '모죽지랑가(慕竹旨郞歌)' 감상하기

 

 

  <신라 때의 발음>

 

  

                                              <양주동 해독>

 

  <현대어 풀이>

 

  간 봄을 그리워함에
  모든 것이 울며 시름하는데
  아름다움을 나타내신
  얼굴에 주름살이 지려 하는구나. (결국은 죽었다)
  눈 깜박할 동안에 (사람들도 눈 깜박할 사이에 죽을 것인즉)
  만나 뵙기를 짓고져.(나도 저 세상에서 만나 뵈옵기를 만들 것이다)
  랑이여, 그리운 마음의 가는 길에
  다북쑥 마을에 잘 밤 있으리. (무덤[저 세상]에서 함께 잠들 밤이 있을 것이다.)

 

  향가 '모죽지랑가'는 신라 제 32대 효소왕( 692∼702) 때 낭도[화랑의 무리]인 득오가 죽지랑이라는 화랑을 추모 또는 사모하여 지었다는 8구체 향가이다.

  이 노래는 죽지랑의 부하였던 득오가 하간직에 있는 선익에게 징발되어 부산성 창직으로 고역에 시달리고 있을 때에 그를 구해준 죽지랑을 그리워하며 지은 노래인데, 지난 날 죽지랑의 아름다운 모습과 인격을 생각하며 잠깐만이라도 만나 보고 싶은 간절한 소망과 지극한 그리움으로 잠 못 이루는 작가의 심정이 서정화된 작품이다. 향가의 작자는 대부분 이름난 승려나 뛰어난 화랑들이 대부분인데 그런 점에서 득오는 예외적인 향가 작자라 할 수 있다.



ball03a.gif 갈래 : 8구체 향가, 서정시
ball03a.gif 운율 : 외형률
ball03a.gif 작가 : 득오곡(得烏谷) ['득오'라고도 함]
ball03a.gif 연대 : 신라 효소왕 때
ball03a.gif 성격 : 추모적, 찬양적, 흠모적
ball03a.gif 주제 : 죽지랑의 인품에 대한 사모와 그에 대한 추모
ball03a.gif 의의 : ① 8구체 향가로서 화랑의 세계를 보여 주는 작품이다.
           ② 주술성이나 종교적 색체가 없는 순수한 서정시이다.

ball03a.gif 출전 : 삼국유사 권 2, 기이(紀異) 효소왕대(孝昭王代) 죽지랑(竹旨郞)

 

  신라 32대 효소왕 때 죽지랑의 무리 가운데 '득오'라고 하는 급간(級干;신라 관등9위)이 있었다. 화랑도의 명부에 이름을 올려 놓고 매일 출근하더니, 한 열흘 동안 보이지 않아, 죽지랑이 그의 어미를 불러 아들이 어디에 갔느냐고 묻자, "당전(幢典;오늘날의 부대장) 모양부(牟梁部)의 '익선' 아간(阿干:신라관등제6위)이 내 아들을 부산성의 창직(倉直)으로 임명하여 급히 가느라고 낭께 알리지 못하였습니다."고 했다. 죽지랑은 "그대의 아들이 만일 사사로이 그 곳에 갔다면, 찾아볼 필요가 없겠지만, 공사로 갔다니 마땅히 가서 위로하고 대접해야겠소." 하고는, 익선의 밭으로 가서 떡과 술을 득오에게 먹인 다음 익선에게 휴가를 청했으나, 허락치 않았다. 그때 마침 간진이라는 사람이 추화군(지금 밀양) 능절의 조(租-조세) 30석을 가지고 가다가 죽지랑의 선비를 존대하는 풍도를 아름답게 여기고, 익선의 막히고 융통성이 없는 것을 비루하게 생각하여, 벼 30석을 익선에게 주면서 휴가를 청했으나 역시 허락치 않았다. 이에 진절사지가 쓰는 말안장을 주었더니 드디어 허락했다. 조정의 화주(花主)가 이 이야기를 듣고 익선을 잡아다가 추한 마음을 씻겨 주고자 했으나 도망쳤으므로, 아들을 대신 잡아갔다.

 

 


  이 노래는 죽지랑을 사모하는 정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더욱 깊어감을 나타낸 순수 서정시다. 죽지랑과 고락을 같이 하던 시절을 그러워하노라니, 이 세상 모든 것이 그의 죽음을 슬퍼하는 듯하다. 그 아름답던 모습이 눈에 선한데, 그 분의 얼굴에 주름살이 생기고 급기야 죽음을 당하니 그 슬픔은 표현할 길이 없다. 그러나, 나도 눈 깜박할 사이에 이 세상을 떠나게 될 것이니 저 세상에서라도 만나게 되기를 기약하는 것이다. 이토록 그리워하는 마음이 행여 무심치 않게 된다면, 저 세상 어느 곳에서라도 함께 잠들 날이 있지 않겠는가.
  작가의 죽지랑을 사모하는 마음이 얼마나 진실하며 간절한가를 잘 알 수 있는 작품이다. 그런데, 이 서정시의 감정 표현이 여성적 발상이라는 점과 이와 같은 정조는 후대의 정과정(鄭瓜亭)이나 정철(鄭澈)의 양미인곡(兩美人曲)과 일맥 상통하는 바가 있는 점에 주목할 만하다.


<설화를 바탕으로 한 감상과 해설>


  이 설화는 크게 세 단락으로 이루어졌다.
  첫째 단락은 죽지랑의 낭도인 득오가  익선이라는 자에게 끌려 부산성 창고지기로 고역한 이야기와, 이 말을 들은 죽지랑이 무리를 이끌고 가서 뇌물을 주고 구출한 이야기가 적혀 있다. 이 기록에서 눈 돌릴 사건은 뒤에 대왕이 이사실을 알고 익선이 살던 모량리인(牟梁里人)으로 하여금 일체의 관직 및 승직에 오르지 못하게 하였다는  인과응보담이다. 둘째 단락은 노래의 주인공이 되는 죽지랑의 출생담이다. 이 출생담은 죽지랑이라는 인물을 영웅시하는 데서 전래한 설화다. 영웅들의 전형적인 출생설화와 같다. 셋째 단락은 득오가 지었다는 노래 내용이다.
  <삼국유사>의 본 기록을 검토할 때, 둘째 단락과 셋째 단락 첫머리 기술에 주목하게 된다. 이 조목의 단락 중, 가장 중심이 되는 이야기는 첫째 단락이다. 그리고 일연은 여기에다 가장 큰 비중을 둔 것이다. 나머지  2,3단락은 1단락의 내용을 보완해 준 것이다. 그러므로, 얼핏 보기에는  <삼국유사>의 편집 서술에는 선후를 무시하고 무질서하게 편집한 것 같으나, 실은 내용의 비중을 두고 생각한 편집 구성이란 점을 유의할 일이다. <삼국유사>는 일연에 의해 철저하게 재편집 구성되었고, 그것은 내용에 따라 경중을 두었다.
  첫째 단락에서 보여준 죽지랑의 득오곡 구출담과, 익선이 보응담이 이 조목의 핵심이다. 둘째 단락의 죽지랑 출생담과, 세째 단락의 [모죽지랑가]는 이에 따른  나머지 이야기들이다. 둘째 단락 죽지랑의 출생 애기를 하나의 설화로 보는 데는 별다른 이론이 없다. 죽지랑의 출생은 부모인 술종공(述宗公)부부가 죽지령에서 만난  거사(居士)를 꿈에 보고 태기가 있어 잉태하여 죽지랑을 낳았다는 점과, 몽중 거사와 죽지령 거사는 동일인이란 점과, 거사가 죽은 뒤 죽지령 북쪽 봉우리에다 장사지내고 미륵을 만들어 무덤 앞에 세웠다는 것이다. 다음, 셋째 단락은 전혀 <모죽지랑가>의 내용 뿐이다.
  일연은 전승 설화를 <삼국유사>속에 채록하면서, 특히 구전 설화로서 기이한 내용에는 유독 관심을 가졌고, 그런 신이한 사건들은 일연의 승려로서의 신분, 나아가서는 이런 종교적 이적이 포교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2, 3단락에서 보여준 신이한 면모나 내용은 모두가 시공을 초월한 불교의 윤회 및 내세관에서 비롯된 것이다.  
  [모죽지랑가]는 민요적인 성격이 있다.다시 말해 죽지랑의 출생담이 하나의 훌륭한 설화로 받아지듯, [모죽지랑가]도 전승 추도가로서 널리 입에서 불려진 노래라 하겠다. 그리고, 그 속에는 인생의 허무와 내세에 대한 종교관이 깃들어 있다고 본다. 이 노래는 하나의 훌륭한 추모가요의 유형으로 불교사상에 뿌리 박은 노래라 본다.
  그러면 이 설화 내지는 노래는 어떤 분위기에서 나온 것인가. 아마 그 당시에는 삼국통일의 위업을 세우는데 크게 이바지한 화랑에 대한 관심이나 평가가 다소 낮았던 것으로 판단된다. 그 이유는 이 설화나 노래가 화랑의 자랑스러움보다는 죽지랑의 시련에다가 자신의 고난을 보태어 하소연하려고 한 점이 주목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득오를 괴롭힌 익선은  죽지랑보다 더한 세력가였다. 죽지랑이 삼국통일의 위업을 가진 지도자로서 숭앙을 받는 인물이었다면, 익선은 권력을 이용해 탐욕을 채우는 지배층의 횡포를 보여준다고 짐작된다. 따라서 이 시대는 고매한 이상이 무너지고 지배층이 횡포를 자행하던 사태가 벌어지는 때였고, 득오는 이에 항거하며 이 노래를 불렀으리라 생각된다.


 


1. 창작 시기에 대한 견해
  득오가 죽지랑의 생존시에 지은 것이라는 견해[양주동]와 죽지랑이 죽은 뒤에 지은 것이라는 견해[김동욱], 그리고 죽지랑이 효소왕 때의 인물이 아니고 진덕 여왕 때의 인물로, 그 때의 작품일 것이라는 견해 등이 있다.


2. 김완진(1980) 해독(현대어 역)

  지나간 봄 돌아오지 못하니
  살아계시지 못하여 우올 이 시롬
  殿閣(전각)을 밝히오신
  모습이 해가 갈수록 헐어 가도다.
  눈의 돌음없이 저를
  만나보기 어찌 이루리.
  郞(낭) 그리는 마음의 모습이 가는 길
  다복 굴헝에서 잘 밤 있으리

3. 다른 작품과의 관련성

  화랑(花郞)과 관련된다는 면에서 융천사의 [혜성가], 충담사의 [찬기파랑가]와  한 묶음이 될 수 있고, 추모적이란 면에서는 [제망매가]와 한 묶음이 될 수 있다. 작자가 화랑이라는 면에서는 월명사(月明師, 승려이면서 화랑이었음)의 향가와 관련이 있다. 현재 전하는 향가 중에는 8구체 향가가 이 노래와 [처용가] 둘 밖에는 없으므로 처용가와는 동일한 형식의 노래라는 관련이 있다.


 

4. 추모시로 보는 관점과 사모시로 보는 관점

  이 작품은 그 창작 시기와 관련하여 노래의 성격이 추모시 또는 사모시로 달리 해석된다. 전체적으로 1/2/4/5/6행이 이 시의 성격을 좌우한다고 할 수 있는데, 두 가지로 해석할 경우 제 1∼2행과 제4행의 해석이 가장 달라진다. 

  1) 추모시로 볼 경우

  제1, 2행은 '지나간 봄 돌아오지 못하니/살아 계시지 못하여 울다 말라 버릴 이 시름'으로 읽혀져 죽지랑은 이미 죽어 세상에 없으므로 그와 함께 보낸 봄은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것으로 해석되며, 때문에 제4행에서도 그 모습이 '해가 갈수록 헐어 가게' 되는 것이다. 설화에서처럼 득오가 죽지랑에게서 큰 은덕을 입었기에 죽지랑이 세상을 떠나자 추모의 정을 못 이겨 이승에서의 헤어짐과 슬픔, 그리고 피안에서의 만남과 기쁨을 대비시키면서 사랑과 깨달음의 힘으로 무상한 현실을 이겨 나가는 한 인간의 모습을 감동적으로 그려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큰 은덕을 베풀었던 죽지랑이 세상을 떠난 다음 득오가 추모의 정을 노래한 것으로 보는 추모시의 시각은, 1∼2행에서 시적화자의 슬픈 심정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간 봄'은 郞이 살았던 당시의 좋았던 날들로서 이제는 다시 못 올 날들로 비통한 시름을 보여준다. 3∼4행은 비통한 심경이 더욱 깊어진다. 따라서 인생의 무상감을 환기시킨다. 5∼6행은 그러한 비통하고 무상한 현실에 대한 대안으로서 피안의 세계에서의 새로운 만남이 그려져 있다. 헤어짐이 영원한 것은 아니라는 離者定會의 불교적 깨달음이 화자로 하여금 피안의 세계에서의 기쁨과 감격의 재회를 확신하게끔 한 것이라 하겠다. 종교적 깨달음을 통해 회한과 비통이 희망과 기쁨으로 변전하는 시적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다. 7∼8행은 郎과의 재회를 향한 화자의 신념, 혹은 다짐을 재확인하는 부분으로서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다보짓 굴헝'을 무덤으로 또는 험하고 삭막한 이승으로 해석하건 간에 화자에게는 郞이 없는 세상은 별 의미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郞에 대한 그리움이 드러난다. (김완진)
  이와 같이 추모시로 읽을 경우 이 작품은 격조 높은 서정시로서의 모습이 드러난다. 이 작품은 이승 에서의 헤어짐 / 슬픔과 피안에서의 만남 / 기쁨을 대비시키면서 한 인간이 사랑과 깨달음의 힘으로 무상한 현실을 이겨 나가는 모습을 감동적으로 그려낸 <제망매가>에 견줄 만한 불교적이고 구도적인 서정시다. 이 작품의 郞을 '님'과 같은 상징적인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이 작품은 특정 개인에 대한 추모시의 차원을 넘어서 그리움의 시, 사랑의 시 그리고 깨달음의 시로 보편적 의미를 획득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맥 해석은 배경 설화와는 거리가 있다는 점이 문제이다.


  2) 사모시로 볼 경우

  제1, 2행은 '간 봄 그리워함에/울다 말라 버릴 이 시름'으로 해독되어 함께 지낸 봄을 그리워하고 그러한 그리움 때문에 모든 것을 슬프게 바라보게 된다고 해석할 수 있다. 제4행도 '얼굴이 주름살을 지니려 하옵니다'로 해석되어 세월의 경과만을 나타내게 된다. 이 노래의 시적 화자는 익선에게 징발되어 부역하고 있던 당시의 득오가 되며, 현재의 황량한 고난의 처지에서 죽지랑을 다시 만난 감격과 기쁨을 기다리는 애절한 사모의 정을 표현한 작품이라 해석된다. 결국 죽지랑을 향한 득오의 변치 않는 존경을 잘 나타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사모시의 시가일 경우, 1∼2행은 郞과 헤어져 마음을 다잡지 못하고 시름하는 화자의 현재 상황을 표현한다. 화자가 랑과 함께 지냈던 지난 세월을 '간 봄'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노약한 존재가 된 죽지랑의 위세 당당했던 지난 시절을 뜻하는 것으로도 읽을 수 있다. 따라서 여기서의 갑작스런 이별로 인한 비통한 심경은 더욱 애절하게 보인다. 3∼4행은 위의 정서를 이어받아 슬픔의 정체를 구체화하고 있다. 모습이 나날이 헐어 가고 있는 데 따른 안타까움이 제시된다. 수려한 용모 또는 위세의 약화에 대한 안타까움이다. 그러나 '됴하시온'으로 현재형을 보임은 화자에게 있어서만은 아직도 아름답고 위세 당당한 것으로 해석된다. 5∼6행은 시상의 전환이 이루어진다. 화자는 랑과 반드시 다시 만나게 될 것이라는 것, 랑이 반드시 자기를 찾아오리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다. 즉 위 부분과는 달리 랑과의 재회에 대한 기대, 믿음이 두드러진 정서가 되고 있어 시상의 변환이 이루어진다. 7∼8행은 화자의 심정을 응축한 것으로 랑에 대한 화자의 애절한 사모의 정이 표출된다.
  이러한 사모시의 시각의 해석은 이 작품이 현실 상황을 일방적으로 어둡게 그리지 않고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적 구도 속에 절망과 희망, 슬픔과 기쁨을 한데 아우르고 있는 것으로 된다. 이러한 해석은 이 시가를 서정시가로 보기보다는 몰락한 화랑세력의 비애를 함축하고 있고 다시 희망과 기쁨은 왕권과 결부되어 다시 힘을 발휘한다는 사실과 맞닿아 있어 현실을 노래한 시가로 보인다. 그러나 이 작품은 사회세력간의 갈등이라는 정치적 요소를 한 인간의 애환이라는 서정성 속에 용해시킨 작품으로 이해된다. 사뇌가가 인간 보편의 정서를 표현한 서정시라 한다면 불교적 성향이 강한 서정시로 보게 되고 반면에 향가 역시 시대와 역사의 산물이며 사회적 갈등을 함축하고 있다는 관점이면 사회적인 갈등을 내포한 서정시로 볼 수 있다.

 

5. <모죽지랑가> 내용소개 동영상_from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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