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김기림(金起林)
나의 소년 시절은 은(銀)빛 바다가 엿보이는 그 긴 언덕길을 어머니의 상여(喪輿)와 함께 꼬부라져 돌아갔다. 내 첫사랑도 그 길 위에서 조약돌처럼 집었다가 조약돌처럼 잃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푸른 하늘빛에 호져 때없이 그 길을 넘어 강가로 내려갔다가도 노을에 함북 자줏빛으로 젖어서 돌아오곤 했다. 그 강가에는 봄이, 여름이, 가을이, 겨울이 나의 나이와 함께 여러 번 댕겨갔다.
가마귀도 날아가고 두루미도 떠나간 다음에는 누런 모래둔과 그러고 어두운 내 마음이 남아서 몸서리쳤다. 그런 날은 항용(恒用) 감기를 만나서 돌아와 앓았다.
할아버지도 언제 난지를 모른다는 동구 밖 그 늙은 버드나무 밑에서, 나는 지금도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 돌아오지 않는 계집애, 돌아오지 않는 이야기가 돌아올 것만 같애 멍하니 기다려 본다. 그러면 어느새 어둠이 기어와서 내 뺨의 얼룩을 씻어 준다. - '조광(朝光)'(193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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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휘 연구>
- 호져 : 혼자
- 향용 ; 항상, 늘
- 버드나무 : 과거의 기억을 현대의 시간대로 끌어들임
<핵심정리>
*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참여시
* 율격 : 내재율
* 성격 : 애상적
* 제재 : 길. 헤어짐
* 주제 : 이별의 상념이 깃든 길 위에서의 애상적 정서
* 출전 : <조광>(1936)
<황소 감상>
주지시를 개척한 김기림의 시적 면모가 잘 드러난 작품이다. 바다가 보이는 긴 언덕길은 어머니의 죽음, 첫사랑의 상실, 그리고 어린 날의 많은 이야기들이 개입되어 있는 공간이다. 그리고 그 길은 항상 화자에게 상실과 외로움, 감기로 상징되는 내면의 울음과 관련되어 있다. 화자는 늘 그 길에서 무엇인가를 기다리고 있으며, 시의 마지막 부분에서 알 수 있듯이 어둠 속에서 조용히 눈물 흘리고 있다. 하지만 이 시는 그 속에서 어떤 특정한 주제를 전달하는 데 목적이 있지는 않다. 단지 화자의 쓸쓸하고 고독한 분위기를 전달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한 분위기를 아로새겨 나가는 감각적 이미지의 아름다움이 이 시의 표현 의도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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