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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문학자료실/고전시가

황조가/유리왕/고대가요-이해와 감상_by황소걸음

by 황소 걸음 2017. 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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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리왕, '황조가'

   翩翩黃鳥(편편황조)              오락가락 꾀꼬리는
   雌雄相依(자웅상의)              암수 서로 즐거운데
   念我之獨(염아지독)              외로울사 이내 몸은
   誰其與歸(수기여귀)              뉘와 함께 돌아갈꼬


  유리왕의 '황조가'는 집단 서정 문학에서 개인 서정 문학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단계의 작품으로 작자와 연대가 뚜렷한 현전 최고(最古)의 서정시이다. 즐겁게 노니는 꾀꼬리의 모습과 임을 이별한 화자의 슬픔을 대비시켜 표현하였다.

<전체 개관>
* 형식 : 4언 4구의 한역시가
* 작자 - 고구려 제2대 유리왕
* 성격 : 개인적 서정시, 삽입 가요
* 주제 ; 임을 이별한 슬픔(외로움)
* 표현 : 우의법(자연물을 빌어 우의적으로 표현), 대조법, 의태법, 선경후정(先景後情)
* 의의 : ① 연대를 확인할 수 있는 우리 나라 최고(最古)의 개인적 서정시
          ② 집단 가요에서 개인적 서정시로 넘어가는 단계의 가요
* 해석 : ① 고구려의 민요로서 유리왕이 가창한 것이다.
          ② 남녀가 배우자를 선택할 때 불려진 사랑가의 한 토막이다.
          ③ 종족간의 상쟁(相爭)을 화해시키려다 실패한 추장의 탄식이다. (서사시)

* 출전 : 삼국사기 권13. 고구려본기1, 유리왕

 

 잠깐 - '꾀꼬리'의 시적 역할
   ㄱ. 실연의 아픔을 깨닫게 하는 존재
   ㄴ. 과거를 회상하게 해 주는 존재
   ㄷ. 님에 대한 그리움을 환기시키는 존재

 

<참고 자료> 

 

1. '황조가'의 배경설화 

  3년 7월에 골천에 머무는 별궁을 지었다. 10월에는 왕비 송씨가 죽었다. 왕은 다시 두 여자를 후실로 얻었는데 한 사람은 화희(禾姬)라는 골천 사람의 딸이고, 또 한 사람은 치희(雉姬)라는 한나라 사람의 딸이었다. 두 여자가 사랑 다툼으로 서로 화목하지 못하므로 왕은 양곡(凉谷)에 동궁과 서궁을 짓고 따로이 머물게 했다. 그 후 왕이 기산에 사냥을 가서 7일 동안 돌아오지 않았는데 두 여자가 싸웠다. 화희가 치희에게 "너는 한나라 집안의 종으로 첩이 된 사람인데 왜 이리 무례한가?" 하면서 꾸짖어 말했다. 치희는 부끄럽고 분하여 집으로 돌아가 버렸다. 왕은 이 말을 듣고 말을 채찍질하며 쫓아갔으나 치희는 성을 내며 돌아오지 않았다. 왕이 어느날 나무 밑에서 쉬며 꾀꼬리들이 날아 모여듦을 보고 느끼는 바가 있어 노래하였다.

 

2. 황조가와 구지가의 비교
  '구지가'는 우선 한역 방법에 있어서 비교적 정제되지 않았으나, '황조가'는 중국 시경의 고시와 조금도 선색이 없는 완전성을 띠고 있다. 그리고 그 내용에 있어서도 '구지가'는 주술성을 띤 시가임에 반하여, '황조가'는 상당히 세련된 감정을 우의적으로 잘 표현한 서정시가이다.


3. 황조가에 대한 다양한 견해

   1) 이병기 - 원시적 서사 문학 가운데서 축수 또는 기원의 요소적인 부분이 분화 독립하여 서정시로 형성되었는데, 황조가도 그 한 예이다.
  2) 임동권 - 고구려의 민요로서 유리왕이 창작한 것이 아니라 가창했을 따름이다.
  3) 정병욱 - 이 노래는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전하는 제례의식 중에서 남녀가 배우자를 선택할 때에 불려진 사랑가의 한 토막이다.
  4) 이명선 - 유리왕의 치희에 대한 개인적인 미련에서 불려진 것이 아니라 종족 간의 상쟁을 화해시키려다 실패한 추장의 탄식이다.
  5) 전래되던 애정의 노래가 유리왕의 이야기 속에 담겨진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최철, 박태상, 고전시가강독, 한국방송통신대학 출판부, 1990)
  5) 유리왕 대의 시대적 상황과 연관시켜 살피는 견해- 유리왕 때 나라 안팎에 시련이 많았다고 한다. 부여와의 싸움이 격화되면서 벌어진 위기는 아직 국력이 약했던 탓이라고 돌릴 수 있으나, 내부적인 시련은 따로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해명 태자가 죽게 되는 사태가 벌어지고, 여기서 보듯이 화희와 치희의다툼도 일어났으며, 아버지와 아들, 임금과 왕비 사이에 오해의 장벽이 생겼다. 시련의 근본적인 이유는 신화적인 질서가 무너지면서 가치관의 전반적인 혼란이 일어난 데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자아와 세계의 동질성이 흔들렸으므로 유리왕은 사태를 바로 이해할 수 없는 혼란에 빠져, 자기 고독을 생각하며 일방적인 사랑노래를 불렀던 것이다. 불러도 해결이 없는 노래이니, 이것이야말로 서정시가 되고 말았다.(조동일, 한국문학통사,지식산업사,1988)
  7) 당초 국어로 된 노래였던 것이 뒤에 한시로 번역되었으리라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혹 후대의 호사가의 위작이라는 등 작자에 대한 시비가 없지 않으나 이 한 편은 비교적 이른 시기에 나온 고대 서정시로서, 개인적인 연애 감정을 꾀꼬리에 의탁하여 표출한 작품으로 왕의 위엄이나 권위가 조금도느껴지지 않으며, 오로지 여인을 그리워하는 한 사나이의 내면세계가 자연스럼게 드러나 있을 뿐이다.(황패강, 윤원식, 한국고대가요, 1991, 새문사)

 

<생각꺼> 

 

1. 시적 자아와 꾀꼬리의 상관 관계를 중심으로 작품의 짜임을 생각해 보자.
  작품의 짜임은 극히 단순하나 대칭 구조로 균형을 이루고 있다. 짝을 이루어 즐거이 노니는 꾀꼬리와 홀로 있는 사람. 하늘을 나는 가벼움과 외로운 심사의 무거움, 그리고 마지막 구절 뒤의 쓸쓸한 여운이 서로 대립하고 중첩되면서 그리움의 간절함과 깊이를 잘 나타낸다.

2. 이 노래를 집단적인 서사시의 일부로 본다면 그 주제는?
  종족간의 대립과 갈등에서 오는 고뇌와 번민

3. 이 노래에서 시적 자아의 정서를 요약한 말을 한역시에서 찾아 1음절만 쓰시오. 
     독(獨)

4. 이 노래가 시대를 넘어 오늘날의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이유는?
  인류의 보편적 정서인 이별과 사랑의 정한을 노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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