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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자료실/현대시자료실42

오렌지/신동집/현대시-간결한 정리와 작품감상 오렌지 신동집 오렌지에 아무도 손을 댈 순 없다. 오렌지는 여기 있는 이대로의 오렌지다. 더도 덜도 아닌 오렌지다. 내가 보는 오렌지가 나를 보고 있다. 마음만 낸다면 나도 오렌지의 포들한 껍질을 벗길 수 있다. 마땅히 그런 오렌지 만이 문제가 된다. 마음만 낸다면 나도 오렌지의 찹잘한 속살을 깔 수 있다. 마땅히 그런 오렌지 만이 문제가 된다. 그러나 오렌지에 아무도 손을 댈 순 없다. 대는 순간 오렌지는 이미 오렌지가 아니고 만다. 내가 보는 오렌지가 나를 보고 있다. 나는 지금 위험한 상태다. 오렌지도 마찬가지 위험한 상태다. 시간이 똘똘 배암의 또아리를 틀고 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오렌지의 포들한 껍질에 한없이 어진 그림자가 비치고 있다. 누구인지 잘은 아직 몰라도. 이 시는 오렌지라는 사물을.. 2016. 6. 8.
엄마 생각/기형도/현대시-간결한 정리와 작품감상 엄마 생각 기형도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 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이 시는 어린 시절의 엄마에 대한 회상을 바탕으로 쓴 작품이다. 가난한 어린 시절에 시장에 나간 엄마를 기다리며 찬밥처럼 방에 담겨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는 화자의 모습을 떠올려 보면, 화자의 막막한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 캄캄해지도록 돌아오지 않는 엄마를 기다리는 화자의 마음은 무섭고 슬펐을 것이다. '안 오시네', '엄마 안 오시네', '안 들리네'로 바.. 2016. 6. 7.
아버지의 마음/김현승/현대시-간결한 정리와 작품감상 아버지의 마음 김현승 바쁜 사람들도 굳센 사람들도 바람과 같던 사람들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어린 것들을 위하여 난로에 불을 피우고 그네에 작은 못을 박는 아버지가 된다. 저녁 바람에 문을 닫고 낙엽을 줍는 아버지가 된다. 세상이 시끄러우면 줄에 앉은 참새의 마음으로 아버지는 어린 것들의 앞날을 생각한다. 어린 것들은 아버지의 나라다. - 아버지의 동포다.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항상 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이다. 아버지는 가장 외로운 사람이다. 아버지는 비록 영웅이 될 수도 있지만 ...... 폭탄을 만드는 사람도 감옥을 지키던 사람도 술가게의 문을 닫는 사람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아버지의 때는 항상 씻김을 받는다. 어린 것들이 간직한 그 깨끗한.. 2016. 6. 7.
꿈 이야기/조지훈/현대시 - 간결한 정리와 작품감상 꿈 이야기 조지훈 문(門)을 열고 들어가서 보면 그것은 문이 아니었다. 마을이 온통 해바라기 꽃밭이었다. 그 훤출한 줄기마다 맷방석만한 꽃숭어리가 돌고 해바라기 숲 속에선 갑자기 수천 마리의 낮닭이 깃을 치며 울었다. 파아란 바다가 보이는 산 모롱잇길로 꽃 상여가 하나 조용히 흔들리며 가고 있었다. 바다 위엔 작은 배가 한 척 떠 있었다. 오색(五色) 비단으로 돛폭을 달고 뱃머리에는 큰 북이 달려 있었다. 수염 흰 노인이 한 분 그 뱃전에 기대어 피리를 불었다. 꽃상여는 작은 배에 실렸다. 그 배가 떠나자 바다 위에는 갑자기 어둠이 오고 별빛만이 우수수 쏟아져 내렸다. 문을 닫고 나와서 보면 그것은 문이 아니었다. - (1961.8) * 형식 : 자유시, 서정시 * 운율 : 내재율 * 주제 : 삶과 죽음.. 2016. 6. 7.
석문/조지훈/현대시-간결한 정리와 작품감상 석문(石門) 조지훈 당신의 손끝만 스쳐도 소리 없이 열릴 돌문이 있습니다. 뭇사람이 조바심치나 굳이 닫힌 이 돌문 안에는, 석벽 난간(石壁欄干) 열두 층계 위에 이제 검푸른 이끼가 앉았습니다. 당신이 오시는 날까지는, 길이 꺼지지 않을 촛불 한 자루도 간직하였습니다. 이는 당신의 그리운 얼굴이 이 희미한 불 앞에 어리울 때까지는, 천 년(千年)이 지나도 눈 감지 않을 저희 슬픈 영혼의 모습입니다. 길숨한 속눈썹에 항시 어리운 이 두어 방울 이슬은 무엇입니까? 당신이 남긴 푸른 도포 자락으로 이 눈썹을 씻으랍니까? 두 볼은 옛날 그대로 복사꽃이지만, 한숨에 절로 입술이 푸르러 감을 어찌합니까? 몇 만리 굽이치는 강물을 건너와 당신의 따슨 손길이 저의 목덜미를 어루만질 때, 그 때야 저는 자취도 없이 한 줌.. 2016. 6. 7.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김춘수/현대시 - 간결한 정리와 작품감상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김춘수 샤갈의 마을에는 3월(三月)에 눈이 온다. 봄을 바라고 섰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靜脈)이 바르르 떤다. 바르르 떠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靜脈)을 어루만지며 눈은 수천 수만의 날개를 달고 하늘에서 내려와 샤갈의 마을의 지붕과 굴뚝을 덮는다. 3월(三月)에 눈이 오면 샤갈의 마을의 쥐똥만한 겨울 열매들은 다시 올리브빛으로 물이 들고 밤에 아낙들은 그 해의 제일 아름다운 불을 아궁이에 지핀다. * 샤갈 : 러시아 출신 프랑스 화가. 초현실주의 화풍 * 관자놀이 : 귀와 눈 사이에 태양혈이 있는 곳 김춘수는 관념의 시를 쓰던 1950년대를 거쳐 1960년대에 이르면 관념과 의미를 해체하고 대상이 갖는 순수한 이미지만을 추구하는 무의미의 시를 쓴다... 2016. 6. 3.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황지우/현대시-간결한 정리와 작품감상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황지우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 삼천리 화려 강산의 을숙도에서 일정한 군(群)을 이루며 갈대숲을 이륙하는 흰 새떼들이 자기들끼리 끼룩거리면서 자기들끼리 낄낄대면서 일렬 이열 삼렬 횡대로 자기들의 세상을 이 세상에서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간다. 우리도 우리들끼리 낄낄대면서 깔죽대면서 우리의 대열을 이루며 한 세상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하는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로 각각 자기 자리에 앉는다. 주저 앉는다. 이 시는 1980년대의 숨막히는 현실 속에서 느끼는 절망감과 좌절감을 표현하고 있다. 극장의 화면 속에서 '삼천리 화려 강산'을 떠나 줄지어 '이 세상 어디론가 날아' 가는 흰 새떼의 영상을 보며 .. 2016. 6. 3.
새/박남수/현대시 - 간결한 정리와 작품감상 새 박남수 [1] 하늘에 깔아 논 바람의 여울터에서나 속삭이듯 서걱이는 나무의 그늘에서나, 새는 노래한다. 그것이 노래인 줄도 모르면서 새는 그것이 사랑인 줄도 모르면서 두 놈이 부리를 서로의 죽지에 파묻고 따스한 체온(體溫)을 나누어 가진다. [2] 새는 울어 뜻을 만들지 않고 지어서 교태로 사랑을 가식(假飾)하지 않는다. [3] ---- 포수는 한덩이 납으로 그 순수(純粹)를 겨냥하지만 매양 쏘는 것은 피에 젖은 한 마리 상(傷)한 새에 지나지 않는다. 이 시는 '새'라는 연작시 중 하나에 해당하는 것으로, 생명의 순수함과 아름다움을 인간의 인위성과 파괴성에 대립시켜 문명 비판적 주제를 제시한 작품이다. * 형식 : 자유시, 서정시 * 운율 : 내재율 * 주제 : 인간의 비정함에 대한 자연의 순수성,.. 2016. 6. 1.
새/김지하/현대시 - 간결한 정리와 작품감상 새 김지하 저 청청한 하늘 저 흰 구름 저 눈부신 산맥 왜 날 울리나 날으는 새여 묶인 이 가슴 밤새워 물어뜯어도 닿지 않는 밑바닥 마지막 살의 그리움이여 피만이 흐르네 더운 여름날의 썩은 피 땅을 기는 육신이 너를 우러러 낮이면 낮 그여 한번은 울 줄 아는 이 서러운 눈도 아예 시뻘건 몸뚱어리 몸부림 함께 함께 답새라 아 끝없이 새하얀 사슬 소리여 새여 죽어 너 되는 날의 길고 아득함이여 낮이 밝을수록 침침해가는 넋 속의 저 짧은 여위어가는 저 짧은 볕발을 스쳐 떠나가는 새 청청한 하늘 끝 푸르른 저 산맥 너머 떠나가는 새 왜 날 울리나 덧없는 가없는 저 구름 아아 묶인 이 가슴 - 새 : 시적화자의 선망의 대상. 자유. - '청청한 하늘', '흰 구름', '눈부신 산맥', '날으는 새' : 화자의 처.. 2016. 6. 1.
상한 영혼을 위하여/고정희/현대시-간결한 정리와 작품감상 상한 영혼을 위하여 고정희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 뿌리 깊으면야 밑둥 잘리어도 새순은 돋거니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 뿌리 없이 흔들리는 부평초잎이라도 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 이 세상 어디서나 개울은 흐르고 이 세상 어디서나 등불은 켜지듯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의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 가랴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 고통과 설움의 땅 훨훨 지나서 뿌리 깊은 벌판에 서자 두 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듯 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니라 영원한 비탄이란 없느니라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마주 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이 시는 '상한 갈대', '뿌리 없는 부평초 잎'일지라도 새순이 돋고 꽃을 피운다는 자연의 모습을 통해 고통을 .. 2016. 6. 1.
이제 오느냐/문태준/현대시 - 간결한 정리와 작품감상 이제 오느냐 문태준 화분에 매화꽃이 올 적에 그걸 맞느라 밤새 조마조마하다 나는 한 말을 내어놓는다 이제 오느냐, 아이가 학교를 파하고 집으로 돌아올 적에 나는 또 한 말을 내어놓는다 이제 오느냐, 말할수록 맨발 바람으로 멀리 나아가는 말 얼글얼금 엮었으나 울이 깊은 구럭 같은 말 뜨거운 송아지를 여남은 마리쯤 받아낸 내 아버지에게 배냇적부터 배운 * 얼금얼금 : 굵고 얕게 얽은 자국이 듬성듬성 있는 모양. * 울 : 속이 비고 위가 트인 물건의 가를 둘러싼 부분. * 구럭 : 새끼를 드물게 떠서 물건을 담을 수 있도록 만든 그릇 * 갈래 : 자유시, 서정시 * 성격 : 독백적 * 제재 : '이제 오느냐'라는 말 * 주제 일상어에 담긴 새로운 의미에 대한 깨달음 * 특징 : 일상 생활 속의 사소한 언어에.. 2016. 6. 1.
사랑법/강은교/현대시 - 간결한 정리와 작품감상 사랑법 강은교 떠나고 싶은 자 떠나게 하고 잠들고 싶은 자 잠들게 하고 그리고도 남은 시간은 침묵할 것. 또는 꽃에 대하여 또는 하늘에 대하여 또는 무덤에 대하여 서둘지 말 것 침묵할 것. 그대 살 속의 오래 전에 굳은 날개와 흐르지 않는 강물과 누워 있는 누워 있는 구름, 결코 잠깨지 않는 별을 쉽게 꿈꾸지 말고 쉽게 흐르지 말고 쉽게 꽃피지 말고 그러므로 실눈으로 볼 것 떠나고 싶은 자 홀로 떠나는 모습을 잠들고 싶은 자 홀로 잠드는 모습을 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 그대 등 뒤에 있다. 이 시의 제목을 그대로 풀이하면 '사랑하는 방법' 또는 '사랑하는 데 있어서 지켜야 할 규칙'이라고 할 것이다. 화자는 간결하면서도 엄격한 어조를 통해 자신이 생각하는 사랑의 규칙에 대해 전달하고 있다. 그가 제시하는 .. 2016. 5.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