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호, <타인의 방>
(똥침 국어 교실 탑재 자료를 중심으로 재구성)
<작품 해설>
1971년 <문학과 지성>에 발표된 단편 소설. 출장에서 돌아온 남편이 아파트 문을 따고 들어가 보니, 아내가 거짓 쪽지를 남겨 놓고 집은 비운 데서 오는 소외감을 그린 작품. 따라서, 소설 ‘타인의 방’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으로부터 고립감을 맛보는 현대인의 의식 일반에 대한 풍유(allegory)로 읽힐 수 있다.
<핵심 정리>
* 갈래: 단편 소설
* 시점: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
* 성격: 세태 비판적
* 특징: 초현실주의적 기법 사용.
* 배경 : 시간 - 현대 / 공간 - 도시의 한 아파트
시간적 배경으로는 1970년대의 산업의 발달로 급격한 도시화가 추진되던 시기이며, 공간적 배경으로는 산업 사회를 상징하는 아파트의 방 안.
* 주제: 현대인의 소외감과 불안 의식.
<구성>
발단 : '그'가 출장에서 돌아왔지만 아내는 외출하고 없음
전개 : '그'는 친정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메모를 남기고 외출한 아내를 믿지 않음
위기 : '그'의 집 안에 있는 물건들이 살아 움직임
절정 : '그'의 다리가 경직되어 물건들로부터 달아날 수 없음
결말 : 아내가 돌아와 새로운 물건을 발견하지만 곧 싫증을 느끼고 다시 외출함
<줄거리>
'그'는 출장을 마치고 자신의 아파트로 돌아온다. 여러 번 초인종을 누르다가 이웃 사람들과 언쟁을 벌인다. 그래도 문은 열리지 않는다. 그는 열쇠로 문을 열고 실내로 들어선다. 실내는 어두웠다. 아내는 친정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전보를 받고 간다는 내용의 쪽지를 남긴 채 외출하고 없었다.
그는 심한 고독을 느낀다. 아내로부터 더운 음식으로 대접받기를 기대했지만 집 안에는 음식조차 못 먹게 되어 있었다. 신문을 보려 했으나 신문도 없었다. 시계는 일주일 전의 날짜로 죽어 있었다. 날짜를 맞추려다 시계를 내동댕이친다. 욕실에서 목욕을 한다. 몸을 정성 들여 닦는다. 그 후 음악을 들으며 소파에 길게 눕는다.
그러다가 화장대에 놓인 아내의 쪽지를 보다가 문득 아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원래 그는 내일 돌아오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아내는 오늘 전보를 받았다고 써 놓았다. 아마 아내는 그가 출장 간 날부터 집을 비웠을 지도 모른다.
갑자기 무슨 소리가 들린다. 그는 사납게 주위의 가구를 노려본다. 가구들이 일제히 움직이다가 도로 제 자리에 가라앉는다. 그는 하나하나 훑어보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 물건들은 이미 어제의 물건들이 아니다. 그는 술을 마시고 꽁초를 찾아 담배를 피운다. 안심이 되지 않아 집 안 여기저기를 살펴본다. 갑자기 책상이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방안의 가구와 온갖 기물들이 날뛰기 시작한다. 그는 도망가려 하지만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다. 그는 모든 것을 체념한다.
다음 다음날 오후, 한 여자가 아파트에 돌아온다. 여자는 '새로운 물건'이 하나 있음을 발견한다. 여자는 며칠 동안 '그 물건'을 돌보다가 이내 싫증이 나 방을 떠난다. 그녀는 전과 같은 내용의 메모를 화장대 위에 남긴다.
<등장 인물>
- 그 : 평범한 셀러리맨으로 소심하고 정서적으로 불안한 상태임. 출장에서 돌아온 '그'는 자신의 삶의 근거를 이루고 있는 모든 것들에게 거리감을 느낀다.
- 아내 : '그'의 아내. 남편이 출장 간 사이 쪽지를 남기고 외출한다.
<이해와 감상>
1.
<타인의 방>은 1971년 3월 <문학과 지성> 3호에 발표한 단편으로 도시의 일상 생활에서 겪는 현대인의 소외를 상징적으로 묘사한 작품이다. 작품의 주인공은 어느 날 가장 확실하다고 믿어온 것들로부터 무너지는 자신의 삶을 발견한다. 주인공은 자신의 아내, 자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까지 옆집 사람들로부터 소유권을 인정받지 못하는 것을 시작으로 해서 자기 스스로를 타인으로 느끼는 상황으로 빠져 들어간다. 일상 생활의 모든 것들이 낯설게 느껴지면서 현실에서 고립감에 사로잡힐 뿐만 아니라 모든 것으로부터 소외된 주인공은 결국 스스로를 집 안의 사물 중의 하나로 생각하게 된다.
최인호는 발랄하고 참신한 감수성으로 기성 문단에 충격을 던지면서 등장하였다. 그의 작품 세계는 환상적인 소설 공간의 구축과 대담한 현실 도전으로 폭넓은 작가 의식을 보여 준다.
그의 작품들은 네 가지 계열로 분류할 수 있는데, 첫째는 <술꾼>, <모범 동화>, <처세술 개론>등과 같이 어른이 되어 버린 어른들이 등장하는 알레고리의 세계, 둘째는 <타인의 방], <견습 환자>와 같이 도시라는 삶의 공간에서 자기 소외를 경험하는 단편들, 셋째는 <미개인>, <다시 만날 때까지>, <깊고 푸른 밤>등의 현실의 단면을 포착함으로써 삶의 의미를 정면으로 규명하려 한 단편들, 그리고 그의 작가적 성과를 유감없이 발휘한 [별들의 고향],[불새]와 같은 장편들에서는 도시적 감수성과 섬세한 심리 묘사,극적인 사건 설정 등을 구비하고 있다.
이 소설은 초현실주의적 기법으로 현대인의 소외를 묘사하고 있다. 자신의 방에서조차도 우울과 고독, 불편과 불안을 느끼는 남자의 내면을 마침내 주위의 사물에까지 투영되어 그 사물들을 움직이게 한다. 가구들이 어제의 가구가 아닌 것처럼 그 방은 자신의 방이면서도 낯설고 불편하다. 곧 '타인의 방'인 것이다. 이것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으로부터 철저한 소외감과 고립감을 맛보는 현대인을 비유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한 상태로부터 벗어날 수도 없으며 오직 체념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러한 상황은 계속 반복되는 것이다.
2.
‘타인의 방’은 현대인의 소외 의식을 표현한 초현실주의적 기법의 작품이다. 출장에서 돌아온 주인공은 자신의 방임에도 불구하고 우울하고 고독해 한다. 마침내는 주인공의 불안 심리가 자신의 방 내부의 모든 사물들에 투영되어 사물들을 움직이게 한다. 그의 주변에 있는 모든 사물은 이제 어제의 사물이 아니라 낯설고 불편한 것일 뿐이다. 즉, '타인의 방'인 것이다. 그는 환경에 대하여 주인이 되지 못하는, 따라서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으로부터 외면당하는 비애를 느낀다.
소설의 말미에서 그의 아내는 '새로운 물건'을 발견한다. 그것은 그녀의 남편일 수도 있고 아니면 아예 낯선 어떤 물건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녀에게 있어서 집안의 존재들은 그저 '물건'이라는 점이다. 이것은 주인공과 가구 집기들과의 관계가 그러하듯이 아내와의 관계도 인간적인 관계가 아닌 낯선 관계, 불안한 관계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가장 두려운 것은 이러한 상황이 반복된다는 점일 것이다.
<작가 소개>
<참고 자료>
산업사회의 소외 심층적 투시 - 성민엽(문학평론가. 충북대 교수)
1971년에 발표된 「타인의 방」은 산업사회적 소외를 다루고 있다. 개발 독재로 특징지어지는 70년대는 한편으로는 권위주의적 정치 체제의 지배가 다른 한편으로는 산업자본주의의 급속한 발전이 한국인의 삶을 규정하였던 바 「타인의 방」은 특히 후자의 맥락에서, 종래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삶의 양상을 표면적으로가 아니라, 심층적으로 투시하고, 독특한 방법과 개성적인 문제로 형상화하였다.
원래 소외(Alienation) 는 헤겔, 포이에르바하, 마르크스 등에 의해 철학적 주제로 제기되었던 것이지만, 산업사회적 소외는 그것들과는 좀 다르다. 이 소외는 산업사회. 대중사회에서의 인간의 존재 방식을 파악하는 개념이다. 산업사회. 대중사회에서 인간은 원자화된다. 그는 전통적인 인간 관계를 상실하고 고립된 개인이 되어 존재의 고독을 앓게 된다. 더욱 심각한 것은 타인과의 관계에 있어서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부터도 소외된다는 것이다. 자기 자신이 낯설어지고 마치 타인처럼 느껴지게 된다. 이 자기 소외가 한층 심화되면 자기 자신을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사물로 느끼게까지 된다.
며칠 간의 출장에서 돌아온 「타인의 방」의 주인공은 외출한 아내의 쪽지만 남겨진 채 텅 비어 있는 자신의 집을 갑자기 낯설게 느낀다. 아파트의 이웃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그의 아내는 거짓 쪽지를 남겨놓았다. 고립된 개인으로서의 고독감이 그를 엄습한다. 사실상 여기까지는, 이 작품이 씌어진 당시로서도, 평범하고 진부한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여기까지만 보면 제목의 ‘타인의 방'이라는 말은 ’남의 방처럼 낯설어진 방' 이라는 뜻에 그칠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다. 「타인의 방」의 주인공은 자기 자신을 낯설게 느끼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제 ‘타인의 방'은 ’타인처럼 낯설어진 나 자신의 방'이라는 뜻을 갖게 된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낯설게 느끼는 이 자기 소외는 사물화로까지 진전된다. 방 안의 사물들이 살아 움직이고 인간인 그는 거꾸로 하나의 사물로 굳어버린다. 이 작품은 명백히 하나의 앝레고리인 바 이 소외의 알레고리는 가위 충격적이다. 그것은 문학적으로는 카프카의 알레고리를 계승하고 있고, 사회적으로는 현대산업사회의 핵심적 문제를 꿰뚫고 있다.
주목해야 할 것은 최인호의 대부분의 작품에 나타나는 관능이 여기서도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최인호에게 관능은 이중적 의미를 지닌다. 하나는 소외로부터의 복귀의 방법이라는 의미이고, 다른 하나는 소외에의 탐닉이라는 의미이다. “낙수물이 신기해서 신을 받쳐들던 어릴 때의 기억처럼 그는 자그마한 우산을 펴고 화환처럼 황홀한 그의 우주 속으로 뛰어든 셈이었다. 그는 공범자가 되고 싶은 욕망을 느꼈다."라고 진술되는 장면에서 그의 사물화가 시작되는 것을 보면 「타인의 방」의 관능은 후자로 기울어 있다. 소외에의 탐닉이 소외를 완성시키는 것이다.
선의의 드러냄이라는 주제는 1977년에 발표된 중편소설 「개미의 탑」 에서도 집중적으로 다루어지는데, 광고 업무에 종사하는 주인공의 소외 의식의 심화와 개미의 출현을 병치시키고 있는 「개미의 탑」은 한층 복합적인 비유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지만, 주인공이 자기 자신을 개미의 탑의 재료로 제공하며 비로소 안심'하는 이 작품은 「타인의 방」과는 달리 짙은 도피의 색채를 띤다. 「타인의 방」의 소외에의 탐닉은 소외 극복의 추구와는 거리가 멀지만, 도피로 추락하기 바로 직전의 자리에 아슬아슬하게 서서 비극성을 강렬히 드러낸다. 최인호 특유의 눈부신 직유법과 예민한 도식적 감수성이 그 드러냄을 더욱 강렬한 것으로 만들어준다. 여기에 「타인의 방」의 탁월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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