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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자료실66

병든 서울/오장환/현대시 - 병든 서울 오장환 8월 15일 밤에 나는 병원에서 울었다. 너희들은 다 같은 기쁨에 내가 운 줄 알지만 그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일본 천황의 방송도, 기쁨에 넘치는 소문도, 내게는 곧이가 들리지 않았다. 나는 그저 병든 탕아(蕩兒)로 홀어머니 앞에서 죽는 것이 부끄럽고 원통하였다. 그러나 하루 아침 자고 깨니 이것은 너무나 가슴을 터치는 사실이었다. 기쁘다는 말, 에이 소용도 없는 말이다. 그저 울면서 두 주먹을 부르쥐고 나는 병원을 뛰쳐나갔다. 그리고, 어째서 날마다 뛰쳐나간 것이냐. 큰 거리에는, 네거리에는, 누가 있느냐. 싱싱한 사람 굳건한 청년, 씩씩한 웃음이 있는 줄 알았다. 아, 저마다 손에 손에 깃발을 날리며 노래조차 없는 군중이 만세로 노래를 부르며 이것도 하루 아침의 가벼운 흥분이라면….. 2016. 5. 31.
바라춤/신석초/현대시 - 간결한 정리와 작품감상 바라춤 신석초 언제나 내 더럽히지 않을 티없는 꽃잎으로 살어 여려 했건만 내 가슴의 그윽한 수풀 속에 솟아오르는 구슬픈 샘물을 어이할까나 청산 깊은 절에 울어 끊인 종소리는 아마 이슷하여이다. 경경히 밝은 달은 빈 절을 덧없이 비초이고 뒤안 이슥한 꽃가지에 잠 못 이루는 두견조차 저리 슬피 우는다 아아, 어이 하리. 내 홀로 다만 내 홀로 지닐 즐거운 무상한 열반을 나는 꿈꾸었노라. 그러나 나도 모르는 어지러운 티끌이 내 맘의 맑은 거울을 흐리노라. 몸은 설워라. 허물 많은 사바의 몸이여 현세의 어지러운 번뇌가 짐승처럼 내 몸을 물고 오오, 형체, 이 아리따움과 내 보석 수풀 속에 비밀한 뱀이 꿈어리는 형역(形役)의 끝없는 갈림길이여. 구름으로 잔잔히 흐르는 시냇물 소리 지는 꽃잎도 띄워 둥둥 떠내려가것.. 2016. 5. 31.
바다와 나비/김기림/현대시 - 간결한 정리와 작품감상 바다와 나비 김기림 아무도 그에게 수심(水深)을 일러준 일이 없기에 흰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靑)무우 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공주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삼월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글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승달이 시리다. 이 시는 1920년대 낭만주의의 병적 감상성과 경향파의 정치적 관념을 부정한 이른바 모더니즘 운동의 대표작이다. 김기림의 초기 시('기상도')에서 자주 보이던 낯선 외래어의 사용이나 경박함이 배제되고, 선명한 이미지를 제시하고 있다. 연약한 나비와 광활한 바다와의 대비를 통해 '근대'라는 엄청난 위력 앞에 절망할 수밖에 없었던 1930년대 후반 한국 모더니스트의 자화상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 형식 : 자유시, 서정시 * 운율 : .. 2016. 5. 31.
무등을 보며/서정주/현대시 - 간결한 정리와 작품감상 무등(無等)을 보며 서정주 가난이야 한낱 남루(襤褸)에 지나지 않는다. 저 눈부신 햇빛 속에 갈매빛의 등성이를 드러내고 서 있는 여름 산(山) 같은 우리들의 타고난 살결, 타고난 마음씨까지야 다 가릴 수 있으랴. 청산(靑山)이 그 무릎 아래 지란(芝蘭)을 기르듯 우리는 우리 새끼들을 기를 수밖에 없다. 목숨이 가다 가다 농울쳐 휘어드는 오후(午後)의 때가 오거든, 내외(內外)들이여, 그대들도 더러는 앉고 더러는 차라리 그 곁에 누워라. 지어미는 지애비를 물끄러미 우러러보고, 지애비는 지어미의 이마라도 짚어라. 어느 가시덤불 쑥구렁에 놓일지라도 우리는 늘 옥돌같이 호젓이 묻혔다고 생각할 일이요, 청태(靑苔)라도 자욱이 끼일 일인 것이다. 남루 : 헌 누더기 갈매빛 : 짙은 초록빛 지란 : 영지와 난초 농울.. 2016. 5. 31.
목마와 숙녀/박인환/현대시 - 간결한 정리와 작품감상 목마와 숙녀 박인환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生涯)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거저 방울 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상심(傷心)한 별은 내 가슴에 가벼웁게 부숴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는 정원(庭園)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愛憎)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때는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 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 작가(女流作家)의 눈을 바라다 보아야 한다. 등대(燈臺)에 불이 보이지 않아도 그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 2016. 5. 30.
눈길/고은/현대시 - 간결한 정리와 작품감상 눈길 고은 이제 바라보노라. 지난 것이 다 덮여 있는 눈길을. 온 겨울을 떠돌고 와 여기 있는 낯선 지역을 바라보노라. 나의 마음 속에 처음으로 눈 내리는 풍경 세상은 지금 묵념의 가장자리 지나 온 어느 나라에도 없었던 설레이는 평화로서 덮이노라. 바라보노라 온갖 것의 보이지 않는 움직임을. 눈 내리는 하늘은 무엇인가. 내리는 눈 사이로 귀 기울여 들리나니 대지(大地)의 고백(告白). 나는 처음으로 귀를 가졌노라. 나의 마음은 밖에서는 눈길 안에서는 어둠이노라. 온 겨울의 누리 떠돌다가 이제 와 위대한 적막을 지킴으로써 쌓이는 눈 더미 앞에 나의 마음은 어둠이노라 - (1960) 1958년 '현대 문학'지 11월호에 '봄밤의 말씀', '천은사운(泉隱寺韻)' 등 다른 두 작품과 함께 서정주 시인의 추천을 .. 2016. 5. 30.